서울에 사는 동생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점심밥을 지어 주고 싶어서 집에서 만들어 먹고 가까운 바다에 나갔습니다.
서해 바다는 집에서 차를 타고 10여 분 달리면 되니까 꽤 가까운 거리입니다. 가까워서 오히려 자주 가게 되지 않습니다. 멀리서 누군가 찾아왔을 때 그런 때 주로 가 보게 됩니다.
지난여름 런던에 사는 조카 둘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바다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해수욕장은 아직 개장하기 전이었지만 7월 초의 바다는 무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함이 있었지요.
여름 바다 드로잉
해수욕장은 나날이 진화하는 중이어서 탈 것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바닷가를 거닐거나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게 전부였는데 자본의 힘으로 공중에서 바퀴를 구르며 바다를 감상하는 스카이레일바이크, 높은 곳에서 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짚트랙, 물살을 가로지르며 바다를 체험해 보는 제트 보트를 타 보기도 했습니다.
기계의 힘을 이용해 빠르고 속도감 있는 놀이기구를 타 보는 것도 한 번쯤은 해 볼만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밟고 바다로 나가 발을 적시며 걷는 것이 저에게는 훨씬 더 좋습니다. 맨발에 느껴지는 고운 모래의 부드러운 느낌과 바닷물이 닿는 시원한 감촉 때문일 것입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멀리까지 탁 트인 바다를 천천히 마음껏 바라보는 일 또한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시원했습니다.
고등학생인 조카들이 비행기를 타고 저희들끼리 한국에 찾아오고 또 서울에서 딸이 그 조카들을 데리고 내려와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산책하고 시간을 보낸 지난여름의 일들이 저에게는 기억 한켠에 좋은 추억으로 저장되었습니다.
조카들에게 딸에게도 여름 바닷가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된 지금, 여동생이 찾아와 다시 바닷가에 서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날이 춥지가 않아서 동생과 저는 한참 동안 바닷가를 산책했습니다.
바다는 밀물 때라 해안 가까이 들어와 있고 파도는 흰 포말을 넓게 뿌리며 철썩거리고 있습니다. 넓은 하늘과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덕분에 어디에 눈을 두어도 마음이 시원하게 트이는 듯합니다.
오랜 만에 보는 바다가 참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와 바다를 보게 된 동생은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겨울 바다가 참 좋다, 합니다. 더구나 평일의 겨울바다는 인적도 드물어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이곳에 우리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 바다 드로잉
흰 포말을 흩뿌리며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힐링이 됩니다. 파도와 파도가 부딪치고 쏴아아 밀려갔다 밀려오며 자기들끼리 만나고 헤어지고 안아주고 돌아서고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들 삶이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파도가 철썩거리며 드나드는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서서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무언가를 가미하지 않은 자연이 주는 소리와 풍경은 그저 그대로 자연스러워서 우리의 눈과 귀에 들어와 마음에 힐링이 됩니다.
그래서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이 답답함을 해소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와 평안을 느껴 보려고 자연을 찾아오는 거겠지요. 어쩌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자연이기에 자연을 찾는 것은 회귀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을 충전했습니다. 그래서 사는 게 각박해질 때 넓게 펼쳐진 바다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찡그려질 때 철썩거리며 흰 포말을 풀어놓던 파도소리를 상기시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