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 쌓인 겨울 풍경

일상을 기록하는 드로잉

by 밝은 숲

.아침부터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려옵니다. 조용히 소리 없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고 있습니다.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이즈음엔 마음에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할 일이 조급하지 않아져서인가 봅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온몸에 맞고 미끄러운 길을 걸어가는 일은 조심스럽고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가만히 내리는 눈과 하얗게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마음에 온기를 가져다줍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새 오후의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겨울의 햇빛은 짧아서 항상 아쉽고 그립습니다. 꽁꽁 언 날씨지만 햇볕이 푸짐하게 쏟아져 세상을 녹여줄 것만 같습니다. 그런 햇볕을 온몸에 맞으며 길을 나섭니다.


눈 온 뒤의 풍경은 운치가 있어서 아파트를 벗어나자마자 나타난 집 주변을 사진에 담아 봅니다. 지붕은 어젯밤부터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였고 자동차 위에도 저 멀리 소나무 위에도 흰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그 풍경이 겨울스러워 수채화로 그려 봅니다.

사진 찍을 땐 몰랐는데 스케치를 하다 보니 햇볕이 가장 많이 닿는 담벼락 밑 구석진 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졸고 있습니다. 눈이 내린 뒤 눈을 이고 있는 풍경과 오후의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장면은 고양이가 졸고 있을 만큼 평화롭습니다.


낮은 담장으로 마당 안이 훤히 보이는 주택을 지나면서 장독대에 쌓인 눈을 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장독 위에는 저마다의 크기만큼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습니다. 그 풍경이 정겹고 따사로워 사진 찍어 와 그려 봅니다.


시장 안 가게 딸린 집에서 살던 어린 시절, 방 두 개, 부엌과 변소가 있던 살림집에도 장독대가 있었습니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가도록 만들어진 그 공간엔 햇살이 푸짐했는데 엄마가 된장을 퍼 오라고 했을 때 고추장을 조금 가져오라고 했을 때 장독을 열어 어린 손으로 장들을 퍼 왔던 기억이 납니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뿐 아니라 겨울 김장거리도 장독에 넣고 겨울 내 꺼내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냉장고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더구나 김치냉장고는 발명되기도 전의 일이지요.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와 겨울 김장으로 먹었던 담백한 백김치가 생각납니다.

이웃의 장독대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어린 시절 집에 있었던 장독들이 생각나고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들이 떠오릅니다. 일 년 365일 하루도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짓고 음식을 해 주시던 엄마가 그리워집니다.


눈 쌓인 겨울 풍경을 그리면서 어린시절 속 젊은 엄마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않아 설 연휴에도 볼 수 없는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일들이 떠올라서 다행입니다.


눈이 많은 설 연휴입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때 길이 안 좋아 사고 소식도 많이 들립니다. 이 시기에 우리 모두 별일 없이 무탈하게 잘 보내길 소망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