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기록하는 드로잉
동네를 산책하다가 여중 학교 근처까지 걷게 되었습니다. 사십여 년이 훌쩍 지난 그 시절에 제가 다니던 여중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다만 제가 다닐 때 11반까지 있었던 반은 많이 줄었을 테고 한 반에 60여 명이 넘던 아이들도 많이 줄었을 겁니다.
15년 전 딸아이도 집에서 가까운 제 모교인 여중에 다녔는데 그때와도 학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겉모습을 리모델링해 근사하게 꾸몄고 체육관도 새로 지어졌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달라져 버린 학교를 구경하고 학교 뒤쪽 동네를 산책했습니다.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이고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빈 집도 보이는데 그래도 동네는 도란도란 정답게 옛이야기를 나누는 듯합니다. 앞집과 뒷집, 옆집과 옆집이 너무 잘 알아서 마실도 다니고 간식도 같이 나눌 것만 같습니다.
골목길로 접어드니 전봇대도 처마도 벽도 대문도 더 낡은 집들이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돌담 위에 올라앉은 겨울나뭇가지로 둘러싸인 정말 오래된 한옥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집은 지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마저 알 수 없는 집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한옥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옛 기와로 지어진 정말 오래된 한옥을 만나니 괜히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 같지 않아 곧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옛 집들이 그러하듯 단열이 약해 겨울에는 무척 추웠을 그 집에서 누가 얼마나 오래 살다가 떠났을까, 아니면 어떤 노인분이 간신히 연명하며 집에서 살고 계실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운명이지만 그래도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은 더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옛 기와집이 있는 오래된 골목길을 그림으로 그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