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하게 그리고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남편이 여기를 떠나 멀리 여행을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우울증은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어서 주변의 상황이나 일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조차 판단 능력을 상실케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 덕분에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와 잃고 살았던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로마였다. 서양 역사의 기반이 되는 곳,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마흔여덟 살에 7박 9일이라는 시간 동안 로마를 향해 길을 떠났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혼자서 유럽까지, 더구나 한 번도 안 가 본 로마를, 소매치기가 극성이라는데 등등. 걱정과 불안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서 다른 세상과 직면하고 싶었다.
비행기표를 끊어 놓고 한 달 동안 로마와 이탈리아에 관한 책을 읽었다. 레 바캉스의 <로마>, 론리 플래닛의 <이탈리아>, <로마 걷기 여행> 그리고 콜로세움을 제대로 보기 위해 <로마 검투사의 일생> 등을 읽었다. 블로거들이 올려놓은 로마에서 버스와 지하철 타는 법, 티켓 끊는 법 등을 숙지했다. 몇 권의 책을 읽고 일정을 짜기 위해 지하철 노선표를 비교하고 나니 로마에서 봐야 할 중요 지점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숙소는 유랑 카페에서 정보를 얻어 한인 민박을 예약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침과 저녁이 한식으로 제공되어 든든하게 먹고 다닐 수 있었다.
포로 로마노
2014년 3월, 로마의 하늘은 청명했고 날씨는 화창했다. 로마에서 첫날, 걸으면서 이 낯선 도시를 만나고 싶어 숙소에서 가까운 포로 로마노로 향했다.
한 시간 동안 줄 서서 기다리며 입장권을 사 가지고 들어간 곳은 폐허의 공간이었다. 여기저기 건물의 잔해가 널려 있고 돌무더기가 정렬되어 있고 거대한 돌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곳, 개선문의 부조는 2,000년 전 전쟁의 승리를 노래하고 몇 개 남지 않은 고대 로마 신전의 기둥들은 지금까지 남아서 불멸의 신을 찬양하고 있었다.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는 로마 시대 초기, 열린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도로나 배수 시설과 같은 도시 인프라가 만들어지면서 공공건물이 들어서고 신전이 지어지고 개선문도 건설되었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장소이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이곳은 왁자지껄한 시장통, 번화한 도심가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신전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을 테고 누군가는 정치적 토론을 했을 거고 누군가는 장 보러 나왔을 거고 누군가는 재판을 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나 황제의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이면 로마 시민들이 모여들어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정복지를 넓히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이 거리에서 개선 행진을 펼치면서 로마 시민들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브루투스의 칼에 찔려 암살당한 곳도 포로 로마노의 어디쯤이지 않을까.
포로 로마노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듯이 도시도 거리도 흥함이 다 하면 쇠함이 오듯이 내가 본 포로 로마노는 폐허였다.
하지만 그 폐허는 사라진 폐허가 아니고 2,700년 전 태동한 로마의 역사를 기억하고 관광하는 비장미 넘치는 폐허였다.
포로 로마노 옆에는 콜로세움이 있다.
멀리서도 웅장한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너무 거대해서 그 크기와 규모에 압도되는 건축물이다. 돌로 만들어진 아치형 구조가 아름다운 콜로세움은 서기 80년에 완공되어 450년 동안 사용되었다 한다.
콜로세움 외부
여기저기 구멍 나 있는 돌기둥, 반쯤 부서져 있지만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면서 스펙터클함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압도적인 크기의 원형 경기장. 2,000여 년 세월의 더깨가 묻어있는 거대한 돌들의 규칙적이고 웅장한 배열. 콜로세움을 보고 있으면 말을 잃게 되고 혼을 잡아 끄는 역사 속에서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콜로세움에서 로마의 권력자들은 정복지에서 잡아온 맹수들을 굶겨 검투사와 싸우게 했다. 전쟁 포로나 노예로 잡혀 온 사람들을 검투사로 만들어 상대방을 죽여야 살 수 있는 싸움을 하게 만들었고 고대 로마 시대를 재현한 영화에서 보듯이 전차 경기나 해상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콜로세움 내부
검투사와 검투사의 싸움은 수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는 목숨을 건 혈투였다.검투사들의 경기가 막상막하 거나 질 듯하다가 이기는 싸움일 때 수만 명의 관중은 환호하면서 응원하거나 혹은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을 것이다. 마치 우리 현대인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이 혹은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듯이 말이다. 책 <로마 검투사의 일생>에서 보면 시합에서 계속 이긴 검투사는 인기가 대단했다고 하니 검투사의 인기는 목숨을 담보로 한 피 튀기는 생명 연장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검투사에게 콜로세움에서의 경기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부당하고도 가혹한 싸움이었다. 더구나 검투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죽이고 사느냐, 죽느냐라는 굴욕적인 결말만 있을 뿐이었다.
고대의 로마는 정복 전쟁을 벌이면서 도로를 만들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만들어 내었고 싸움마다 승리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서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해 도시국가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런 시대였기에 전쟁 포로로 잡혀온 피정복민을 노동력으로 이용해 콜로세움을 지을 수 있었고 그중에 어떤 전쟁 포로는 검투사가 되었다. 검투사를 이용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싸움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로마인들은 적개심과 승리감을 표출했다.
정복지에서 공수해 온 맹수들의 싸움 역시 로마 시민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에서 혹은 드라마에서 보는 싸움과 살인을 그들은 콜로세움에서 사실적으로 즐긴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전쟁과 살육과 약탈은 빈번한 일이었기에 콜로세움에서 잔혹한 경기들이 450년 동안 인기리에 유지되었을 것이다.
권력자들은 로마 시민들이 좋아하는 경기를 계속 열어주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과 비판을 비껴가게 만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더 굳건히 유지하고 더 많은 사치와 향락을 누렸을 터이다.
콜로세움
눈으로 봐서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은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데, 거대한 것 속에는 핍박받고 살아간 사람들의 피와 땀이, 웅장한 것 속에는 고통을 견디고 살아낸 사람들의 눈물과 한이 함께 뭉쳐져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콜로세움 안에서 부서져 나간 돌덩이와 남아 있는 돌 구조물들 사이에서 한참 동안 서성거렸다. 수만 명의 군중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검투사들의 사력을 다한 싸움과 맹수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돌더미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콜로세움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하늘은 근사하게 파랗고 흰구름은 유유자적 로마에서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우울증은 내 인생에서 어두운 기억이지만 그 캄캄했던 시간들이 있어서 로마에 갈 수 있었고 가서 역사를 만나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알게 되었으니 우울증이 내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싶다.
온전한 모습으로 거대하고 웅장하게 존재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부서지고 깨지면서 2,000년을 견뎌 온 콜로세움을 보고 와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배운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는 잔인함과 포악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서 그리고 진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선한 신을 찾거나 도덕과 철학을 통해 성찰하고 사유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는 건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