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여행하고 읽으며

피렌체 성당을 중심으로

by 밝은 숲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운 도시 피렌체를 담은 책 한 권을 읽었다. 제목은 <인류의 꽃이 된 도시, 피렌체>(김혜경 지음, 호미). 저자는 피렌체의 역사와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신학 전공자답게 종교에 기반한 성당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렌체에서 인문주의를 연 단테와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의 삶과 작품을 설명하고 피렌체의 예술과 건축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피렌체를 알게 되고 역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르네상스 시대 예술 작품에 대한 안목도 얻게 된다. 이번 글에서 나는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들과 책을 통해 소환된 나의 피렌체 여행 이야기를 하려 한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들

세상과 격리되어 수도원 안에서만 생활하는 전통적인 수도회와 달리 13세기에 탁발 수도회가 피렌체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피렌체가 비중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보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 평신도 중심의 생활을 지향하는 탁발 수도회 중에서 설교와 지적 토대를 중요시한 도미니코 수도회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피렌체의 중앙역 부근에 위치한 이 성당에서 꼭 봐야 할 작품으로는 원근법을 처음 시도한 그림인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와 조토의 십자가와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가 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또한 이 성당은 1439년에 피렌체 공의회가 열렸던 장소라 한다. 동방과 서방 교회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시작된 공의회는 원래 목적은 실패했지만 피렌체에 온 동방 정교회 석학들을 통해 플라톤 철학이 유행처럼 번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동방의 다양한 문화나 학문이 유입되었는데 지금도 성당에는 청동으로 만든 천체관측기와 해시계 바늘이 있는 천체 사분의가 남아 있다.


가난한 삶과 형제애를 중시 여겼던 프란치스코회는 산타크로체 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 성당에는 피렌체 출신이면서 인류 역사에 업적을 남긴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 갈릴레이와 마키아벨리 등이 잠들어 있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정치 활동을 하다가 추방되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사망한 단테의 무덤도 있다. 피렌체에 돌아오지 못한 단테의 무덤은 비어 있고 그는 라벤나에 잠들어 있다.

산토스피리토 성당

학문 연구와 복지 선교를 중시했던 아우구스티누스회는 산토스피리토 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434년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이 성당에는 나무로 만든 '미켈란젤로의 십자가' 작품이 있다. 1492년에 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메디치 가의 후원으로 미켈란젤로가 치료받으며 머문 적이 있는데 17살의 미켈란젤로는 찾아가지 않는 시체의 해부를 요청해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근육과 뼈 등 인체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피에타'와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다비드'의 생생함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근육과 뼈와 힘줄이 꿈틀대는 인간의 숨결이 담긴 조각, 돌 속에서 형상을 발견해 파 내는 작업은 세심한 관찰과 깊이 있는 연구,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탐구심이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소환되는 추억들

나는 2019년 11월에 피렌체를 여행했다.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피렌체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장소들, 예를 들면 피렌체의 두오모와 산 조반니 세례당, 우피치 미술관과 아카데미아 미술관, 피티 궁과 베키오 궁, 시뇨리아 광장과 미켈란젤로 광장 등을 다녀왔다. 그중에서 내가 경험한 피렌체의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피렌체의 두오모,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인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피렌체의 두오모와 산 조반니 세례당

처음 와 보는 여행지는 항상 낯섦이 주는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한다.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고 피렌체의 거리로 나오니 숙소 앞 공원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노점들로 가득 찬 가죽 시장을 지나고 산 로렌초 성당을 지나니 붉은색 돔이 인상적인 웅장하고 위엄 있는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오백 여 년이라는 세월의 더깨가 입혀졌음에도 그것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더하는데 이름 그대로 꽃으로 치장한 듯한 대성당이었다. 청록색과 분홍색을 머금은 대리석들이 하얀 대리석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운 화사함으로 돌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앞면

대성당의 앞면은 섬세한 조각들로 가득 차 있어서 건축물 앞면이 하나의 커다란 조각 작품이었다. 대리석의 아름다운 색감과 조각의 섬세함과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되어 눈은 번쩍 뜨였고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성당의 우아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은 보는 이를 압도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노력과 신심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경이로웠다.


붉은색 반원형 모양인 성당의 돔은 1420년부터 1436년까지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르네상스 건축 분야의 뛰어난 성과로 유명하다. 그 당시 누구도 손대기 쉽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돔을 브루넬레스키는 고대 로마의 건축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건축 기법으로 완성해 내었다. 건축 공학적으로 안정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붉은색 돔은 미적인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었다. 비례미와 조화미, 균형미까지 아름다움의 조건이 완벽한 돔이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오랜 시간이 지난 흔적들을 지니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값지고 귀하게 느껴졌다.

돔 내부 프레스코화

두오모 앞 카페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하루 종일 성당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두오모 내부 관람을 예약해 놓아서 줄을 서서 입장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 463개를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천장 가까이에 올랐을 때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본 순간 힘들게 올라왔던 기억들이 모두 사라졌다.


지름 42미터인 돔 내부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압도적인 크기와 색감과 형상들은 놀라웠다. 동생과 친구와 나까지 이번 여행의 동반자인 우리 셋은 머리 위에 존재하는 그림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책에 의하면 이 그림은 1572년부터 1579년까지 그려진 바사리와 주카리의 합작품인 ‘최후의 심판’이다. 둥그런 돔의 둘레에 단계를 나누어 그려진 수백 명의 인물 군상들이 다양한 포즈로 그려져 있다. 천국에는 그리스도와 천사들, 마리아와 성인들이 그려져 있고 지옥에는 사탄과 죄지은 자들이 거꾸로 매달리거나 땅속에 머리를 박거나 서로를 물어뜯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인류 심판의 극적인 순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바사리가 그린 '최후의 심판'은 그의 스승이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을 연상케 해서 스승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색감은 아름답고 구성은 조화롭고 그림의 규모는 놀라웠다.

두오모에서 바라 본 피렌체

피렌체의 두오모는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매력으로 가득했다. 더 오래 보고 싶은 아쉬움을 남기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 조성된 피렌체의 도시 풍경은 평화로웠다. 늦은 가을에 두오모에 올라 바라보는 피렌체는 붉은 꽃으로 활짝 피어 있었는데, 오래되어도 시들지 않고 오래되어서 그 빛이 은은해져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풍경이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 본 피렌체 풍경

피렌체 시내의 전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피렌체의 두오모라면 멀리서 피렌체라는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미켈란젤로 광장이다. 아르노 강 건너편에 미켈란젤로의 빛바랜 ‘다비드’가 서 있는 언덕, 그곳에는 아르노 강을 앞에 두고 병풍처럼 안락한 산에 둘러싸인 꽃의 도시 피렌체가 먼 풍경으로 펼쳐진다.


아르노 강 왼편으로 베키오 다리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우뚝 솟은 베키오 궁과 조토의 종탑과 피렌체의 두오모가 보인다. 석양빛으로 물들어가는 도시의 먼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과 환희를 함께 사진에 담았다.

늦가을의 해는 서둘러 사라지고 어둠이 깔리면서 도시는 다시 불빛으로 물들어갔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에서 비치는 불빛이 아르노 강에 반사되어 밤 풍경은 운치를 더해 간다.


13세기와 14세기를 걸쳐 살았던 단테가 <신곡>에서 자신의 고향을 표현한 곳. 전쟁과 약탈, 홍수와 같은 오랜 시간이 남긴 아픈 흔적들 속에서도 르네상스의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와 라파엘로, 갈릴레이와 마키아벨리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도시. 그들의 시대에 그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21세기의 여행자로 일주일을 머물렀던 피렌체를 소환하는 언제나 기쁜 일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전경이 묘한 여운을 남겨서일까. 때가 되면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깃들 듯이 피렌체에서 꽃 피운 르네상스는 어느덧 저물고 로마로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로 이어져 문명의 꽃을 피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역사 속에서 절정의 시간은 짧지만 피렌체는 오늘날까지 그 시간들을 간직하고 보존해 왔다. 그래서 여행자들에게 선물같은 시간 여행을 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저물녘 도시를 환하게 밝히는 불빛처럼 피렌체는 어둠 속에서의 불빛같이 내 기억 속에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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