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와 코시모 데 메디치

마테오 스트루쿨 <권력의 가문 메디치> (메디치 미디어)

by 밝은 숲

도서관에서 책들을 둘러보다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주제로 쓴 소설책을 보게 되었다. 이탈리아 소설가 마테오 스트루쿨이 쓴 역사소설 <권력의 가문 메디치>는 2017년에 이탈리아 서점들이 투표하는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을 수상했다고 출판사는 소개한다.


세 권의 책을 살펴보니 1권은 코시모 데 메디치, 2권은 로렌초 데 메디치, 3권은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각각 주제로 삼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어간 메디치 가, 그중에서도 특히 걸출한 인물 세 명을 살펴봄으로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잡게 되었는지 그리고 15세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역사와 프랑스의 왕비가 된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통해 16세기 프랑스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리즈였다.


내가 아는 피렌체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가 전시되어 있는 곳, 아르노 강가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던 <신곡>의 저자 단테가 추방당해 평생을 그리워 한 고향,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탄생시킨 곳, 르네상스의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 속에서 피렌체는 도드라졌고 그래서 피렌체는 내 발로 밟아보고 싶은 곳이었고 운 좋게 몇 년 전에 다녀오기도 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여행자의 눈에 21세기의 피렌체는 작은 도시였지만 지어진 지 오백 년도 넘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정교하게 아름다웠고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이 모아 둔 예술품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피렌체가 어떻게 르네상스를 만들어 냈는지 궁금해져서 이것저것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역사소설 <권력의 가문 메디치>에는 15세기 피렌체와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를 중심으로 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음모와 암살, 밀약과 배신 등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피 끓는 인간의 욕망이 흥미롭게 혹은 끔찍스럽게 전개된다.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 작가는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와 프란체스코 귀치아르디니의 <이탈리아사>로 연대기적 뼈대를 세웠다고 밝힌다.


<권력의 가문 메디치> 1권은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1429년부터 1453년까지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코시모의 장년기이자 전성기인 40세부터 64세까지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실제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뒤섞여 이야기는 극적이고 다양성을 띠게 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띤 소설은 1429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에 있는 코시모 데 메디치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대성당의 돔을 건설하는데 미친 듯이 집중하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모습과 그가 고안해 낸 거대한 기계들, 기계들로 꽉 찬 작업장을 보면서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코시모를 보여준다. 아버지 조반니와 뒤를 이어 코시모가 후원한 브루넬레스키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1436년,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돔은 완성된다.


1429년 2월, 코시모의 아버지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사망한다. 조반니는 살아생전 양모 사업과 메디치 은행으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해 자신의 가문을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렸지만 정치적인 입지는 불안했다.


피렌체는 10인 위원회가 통치권을 가지고 있는 공화국이었지만 그 당시 실질적 권력자는 리날도 델리 알비치였으므로 리날도는 조반니가 사망한 후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메디치 가의 형제 코시모와 로렌초를 암살하려 한다. 알비치 가와 메디치 가의 피렌체 권력 장악 싸움에서 리날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암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리날도는 다음 스텝으로 코시모를 고발했고 감옥에 갇혔던 코시모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동생 로렌초와 함께 피렌체에서 추방당한다.


리날도의 정치는 가혹해서 하층민들의 원성이 들끓었고 메디치 가문이 없는 피렌체에는 돈이 돌지 않아서 하층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거기에 더해 흑사병이 창궐해 피할 곳 없는 하층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고 루카와의 계속된 전쟁은 피렌체인들을 재앙으로 몰아갔다. 결국 피렌체 민중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리날도는 추락하고 추방당한다.

화가 폰토르모가 그린 코시모 데 메디치

1434년 마흔다섯 살의 코시모는 1년 만에 피렌체로 복귀하고 그는 명실공히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로 등극한다.


1439년, 피렌체에서 공의회가 열린다. 코시모 데 메디치가 주도하고 후원한 공의회는 그동안 분열되었던 동서양 교회의 만남으로 코시모는 고위 성직자와 그리스 학자 700여 명의 여행 비용을 모두 제공하고 그리스 교회 책임자들을 피렌체에 머무르게 하면서 갖게 될 미래의 이익과 전망을 염두에 두었다.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인문학적 식견이 탁월한 코시모 덕분에 양 교회 수장들이 피렌체에 모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고 메디치 가의 끊임없는 후원으로 피렌체는 이후 플라톤 연구를 비롯한 인문학 아카데미를 통해 인문주의의 부활을 이끈다.


시대를 다스리던 종교 분야의 동서양 만남을 주선했을 만큼 코시모는 그 시대의 종교 문화적 주도권을 확보했지만 정치와 군사적인 문제는 쉽지 않았다. 주변 도시 국가들 간 주도권 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 협상과 배신이 난무하는 시대에 전쟁은 귀족들이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졌고 용병부대를 거느린 용병대장이 권력의 중심부에 오르기도 하는 시대였다.


피헨체에서 추방당한 리날도는 밀라노 통치자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와 손을 잡고 코시모를 몰아내고 다시 피렌체로 복귀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이에 맞서 코시모는 리날도와 밀라노 공작에 대항 동맹을 만든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와 베네치아, 밀라노의 야심 넘치는 용병대장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와 함께다.


1440년 6월 코시모와 동생 로렌초는 밀라노와의 전쟁에 참전한다.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앙기아리 전투에서 만난 피렌체와 밀라노, 유월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화살은 빗발쳤고 검은 서로가 서로를 베었다. 석궁의 공격으로 수많은 병사가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었고 대포의 공격으로 포탄이 쏟아지면서 더 많은 병사들이 산산조각으로 죽어가는 대학살극이 벌어졌다.


앙기아리 전투 장면을 고증해 재구성한 작가는 코시모의 동생 로렌초의 시각으로 앙기아리 전투를 바라보면서 전쟁을 지상의 지옥으로 표현한다. 밀라노의 비스콘티와 리날도를 물리치고 메디치 가의 피렌체가 승리했지만 앙기아리 전투를 통해 메디치 가는 피 위에 그들의 정부를 세우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평가한다.


이야기는 1453년 64살의 코시모가 둘째 아들 조반니에게 메디치 은행 경영을 맡기고 정치적으로는 메디치 가의 입지가 견고해져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할아버지가 된 코시모 앞에는 영리한 눈을 반짝거리는 장난꾸러기 손자, 2권의 주인공인 꼬마 로렌초가 서 있다.


피렌체를 다스렸던 리날도와 코시모는 권력을 욕망했다는 점에서 비슷했지만 코시모가 리날도와 달랐던 점은 평민과 하층민들을 위해 돈을 풀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정치를 펼쳤다는 점이다. 피렌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안정적으로 통치를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덕분이다. 그로 인해 메디치 가의 승승장구는 코시모 시대를 거쳐 아들 피에로와 그의 손자 '위대한 로렌초'라 불리는 로렌초 데 메디치에 이른다.


더구나 코시모는 당장 눈으로 보이는 이득뿐만 아니라 더 멀리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녔다. 그래서 대성당의 돔을 건축하라고 브루넬레스키를 후원하고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해 오늘날의 피렌체를 만들었다.

돈 많은 부자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권력을 가진 자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펼쳐야 하는지 15세기에 살았던 피렌체인 코시모 데 메디치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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