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봄, 일주일 동안 로마를 여행하면서 나는 많은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성당에는 가톨릭의 역사가 담겨 있고 그것은 또 유럽의 역사이면서 인류의 역사적 산물이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로마성당의 천장화들
중세 때 지어진 성당들은 고풍스러운 경건함이 있었고 르네상스 시대 성당은 조각과 장식이 많아지고 천장화가 화려했다. 특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서 본 카라바조의 그림 두 점,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은 인상적이었다. 카라바조 특유의 명암 표현이 그림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만나기 위해 성 베드로 성당과 시스티나 성당을 찾아갔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무릎에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품 피에타가 있다. 그리스도는 이미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상태로 내려져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젊고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아들을 잃은 그 표정은 슬픔을 넘어선 처연함이 담겨 있다. 아들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품은 서른세 살의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의 몸을 감쌀 수 있을 만큼 넓다. 마리아가 입은 옷의 주름은 대리석이 아니라 실제 천을 늘어뜨려 놓은 듯 섬세하게 파여 있고 주름의 그림자로 인해 사실감과 깊이감을 더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갖은 고난으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고 팔과 다리, 손과 발에 정맥과 힘줄, 튀어나온 골격과 근육의 표현이 돌에서 사람을 끌어낸 듯 생생하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손은 숨을 거둔 그리스도를 안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놓여 있어 주여 어찌하오리까,라고 외치면서 한탄하는 듯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성 베드로 성당)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넘어선 섬세함 때문에 보는 내내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스물다섯 살의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만듦으로써 자신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렸고 르네상스 시대 대리석 조각 작품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섬세함 속에 모자의 슬픔이 살아있고 처연한 표정 속에서 슬픔을 승화시킨 아름다움이 있었다.
8년 전에 본 데다가 방탄유리를 사이에 두고 본 작품인데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탄성을 불러 일으키는 걸작이다.
바티칸 박물관의 아름다운 계단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바티칸 박물관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도 있다.
바티칸 박물관은 역대 교황들이 수집해 놓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 작품을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라파엘로 그림까지 인류가 이루어놓은 문화유산의 전당이라 할 만했다. 그만큼 모여드는 사람도 많아서 표를 살 때부터 줄을 서서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의 물결이 이끄는 대로 길을 지나가는데 복도의 천장화까지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역사를 담고 있는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그래서 바티칸 박물관에 들어서면 눈의 호사로 소리 없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다니게 된다.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이 시스티나 성당이다. 시스티나 성당은 바티칸 박물관에서 보았던 놀라운 예술품들을 다 잊게 만드는 놀랍고도 황홀한 세계였다.
눈앞에 보이는 벽화의 크기와 색상, 그려져 있는 인물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에 넋을 잃고 있다가 머리를 들어 올리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숭고한 세계가 500제곱미터가 넘는 천장에 화려하게, 장엄하게, 거룩하게, 프레스코화 그림으로 존재하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서는 천지가 요동치고 있었다. 신의 손길로 바다와 땅이 생겨나고 해와 달이 만들어지고 최초의 인간 아담이 창조되고 있었다.
천장화 <천지창조 > 중 일부
인간의 몸은 고귀한 정신을 나타내야 하므로 아담은 근육질의 몸을 가진 아름다운 나체로 표현되었다. 흰머리와 흰 수염을 휘날리며 흰 옷을 입은 신은 오른팔을 뻗어 검지 손가락을 아담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담은 신의 손길로 생기를 얻으려는 듯 오른팔은 바위에 기대고 왼팔을 들어 신의 검지 손가락에 가 닿게 하려는 중이다.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 성당에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다. 그는 천장을 아홉 개의 화면으로 나눠서 신이 천지를 창조하는 순간, 아담과 이브의 창조,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노아의 생애와 홍수 이야기 등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9개 장면을 가운데에 배치하고 각각 양쪽에 유대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그려 넣었다. 그래서 천장화에는 수백 명의 인물들이 다양한 몸짓과 표정으로 살아 숨 쉰다.
뿐만 아니라 색채감은 50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담긴 만큼 경건하고 거룩하다. 각기 다른 장면들을 통일성 있게 구성함으로써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며 최초의 인간 아담이 신을 만나는 순간을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표현한 상상력이 아름다움을 넘어서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천장화가 위대하고도 거룩한 아우라를 갖는 것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높은 곳에 올라가 고되고 힘든 작업을 외롭게 해낸 미켈란젤로의 노력과 열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재능에 시간과 집념과 영혼을 더해 자신의 삶을 온통 쏟아부어 완성해 낸 의지의 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20대에 피에타를 조각함으로써 명성을 얻고 30대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림으로써 조각뿐 아니라 그림으로도 그 시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명성을 얻었던 미켈란젤로가 60대에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의뢰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린다.
벽화 <최후의 심판> 일부
제단 뒤 드넓은 벽에는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벽면을 꽉 채운 수백 명의 인간 군상들이 보인다. 위쪽 벽에는 오른팔을 들고 심판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와 그 옆에 성모 마리아가 있다. 그 주변에는 나체 혹은 반나체의 성인들이 보이고 그 아래에 나팔 부는 천사들, 하늘로 승천하는 사람들, 지옥으로 떨어져 내리는 사람들, 뒷모습 옆모습 앞모습, 내린 팔 올린 팔 잡는 팔 흔드는 팔, 하늘에 떠 있는 사람들 땅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서로 섞이고 붙잡고 내려가고 올라간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미켈란젤로 자신은 살가죽이 벗겨진 채 성 바르톨로메오가 왼팔로 붙잡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꽉 차 있는 성당 안에서 나는 한참 동안 벽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장화를 바라보았다. 측면에 걸려 있는 보티첼리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다른 유명한 화가들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의자에 앉아서 전율감을 느끼며 최후의 심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천지 창조라는 주제로 어떻게 저런 순간을 창조해냈을까 감탄하면서 천장화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웅장하고 거대한 작품 앞에 서면 저절로 숙연해지고 겸손해진다. 나라는 존재가 점점 작아져서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느낌도 갖게 된다. 신이 창조해 놓은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더구나 인류의 마지막 날 나는 어떤 심판을 받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그림 앞에 서니 더욱 작아지고 압도된다.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죽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인 물음도 갖게 된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영혼을 부어 그려 놓은 그림을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낌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그림이 웅장해서 나는 작아지고 그림에 압도되어 점점 작아지고 그림이 아름다워서 경건해지고 그림의 장엄함에 겸손해지고 주제를 포착한 장면의 생생함에 넋을 잃게 되고 주제를 형상화시킨 상상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고 한 사람이 가진 재능과 노력의 결과물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신기로움과 이런 대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기쁨과 감사함까지...
로마를 여행하면서 나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의 조각 작품들과 유물들, 고대 로마의 유물과 유적지,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예술 작품들, 특히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인상깊게 만나보았다.
지금은 머릿속에 추억으로 저장되어 있는 인류의 보물들이 내 영혼을 좀 더 충만하게 하고 마음을 좀 더 풍요롭게 해서그느낌들이 조금씩이라도 흘러나오는 삶을 살게 되길 나 자신에게 바라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