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이스탄불

유시민 <유럽도시기행1>

by 밝은 숲
이스탄불


아직 가 보지 않아서 내 여행 버킷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도시, 동양과 서양의 접점에 있어 양쪽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는 도시, 이쪽과 저쪽을 아우르지만 그들 특유의 문화가 있는 도시, 그래서 내게는 신비로운 도시,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이스탄불에 대한 이미지다.

책 <유럽도시기행1>에서 작가로서 유시민은 이스탄불을 여행한 기록과 사진을 담았다. 사물의 근원과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작가는 이스탄불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건축물의 흥망성쇠를 함께 다룬다.


이스탄불은 기원이 무려 2,700년이나 되는 유서 깊은 도시다. 처음에 비잔티움으로 불리던 도시가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로운 로마’의 수도로 선포하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뀌었다. 4세기에서 15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던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점령해 이스탄불로 다시 또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책 속에 들어있는 아야소피아의 외부와 내부 사진

여행자들이 이스탄불에서 꼭 가 본다는 아야소피아 박물관, 작가는 그곳을 구경하고는 건축물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 말한다. '거룩한 지혜'라는 뜻의 아야소피아(오스만식 표기)는 처음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박한 교회로 지었지만 지금의 웅장하고 화려한 아야소피아는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완공했다고 한다. 로마와 달리 황제와 교황이 겸직이었던 비잔틴 제국에서 하기아 소피아(아야소피아의 그리스식 표기)는 세속적인 황제의 권력과 종교적인 교황의 위세까지 갖추어야 하므로 크고 화려하고 강한 모습의 건축물을 지었다고 작가는 평한다.


하기아 소피아는 긴 세월을 살아낸 만큼 시련도 많았는데 1203년 베네치아 상선을 타고 온 4차 십자군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다. 온 도시가 약탈당하고 살인과 방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예술품들이 파괴되고 도난당했다. 1453년에는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다.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그들의 약탈 속에서 하기아 소피아는 술탄 메메트 2세의 명령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기독교 교회였던 하기아 소피아를 이슬람 사원인 아야소피아로 개조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작가의 말대로 아야소피아는 오래전에 지어져 숱한 시련과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아테네의 파르테논과 많이 닮아 있다. 다만 부서지고 잘린 파르테논에 비해 아야소피아의 외관은 보존되고 있다. 작가는 비잔틴 제국의 아이콘 건축물이 아야소피아라면 오스만 제국 아이콘 건축물은 블루 모스크라고 한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지하궁전, 토프카프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카펫 박물관과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등이 소개되어 있다.


작가는 아타튀르크를 만나기 위해 돌마바흐체 궁전에 간다. 500여 년간 이어지던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현재의 튀르키예(2019년에 발행된 책에는 터키로 나왔지만 현재는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국명이 바뀌었다)를 세운 인물이 아타튀르크(무스타파 케말)이다. 전쟁 영웅이면서 민족주의 혁명가였던 그는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다. 16년 동안 대통령이면서 군주에 가까웠고 민족주의자이면서 서양 문화를 가까이 받아들인 공화주의자인 동시에 독재자라고 작가는 아타튀르크를 평가한다.


작가의 상세한 이야기 덕분에 오늘날의 튀르키예와 이스탄불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튀르키예의 역사와 이스탄불의 어제와 오늘을 알고 여행한다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게 될 것 같다.


파리


이 책에 나온 도시들 중 아테네와 로마, 이스탄불은 고대 유물과 유적지가 있을 만큼 오래된 도시인데 반해 파리의 역사는 짧다. 하지만 작가는 파리를 지구촌의 문화수도라고 부르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 이유를 에펠탑이 파리의 랜드 마크 1번 건축물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본 파리의 에펠탑(2017년)

세계박람회 관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1889년 324미터의 철골 구조물로 만들어진 에펠탑은 금속 7천300톤을 포함해 전체 무게가 1만 톤이 넘는데 자체 하중과 바람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과학혁명의 산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에펠탑은 또한 공화정이라는 프랑스 정치제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왕이나 교황의 취향이 아니라 공모 절차와 평가를 통해 결정했고 대중들 덕분에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에펠탑은 노예 노동이나 강제 노동 없이 축조되었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 인권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에펠탑에서 바라 본 파리 전경

2017년에 여동생과 나는 파리 여행을 했는데 런던에 사는 남동생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파리에 왔었다. 1박 2일 일정으로 시간을 낸 남동생과 함께 하려고 에펠탑은 미뤄두고 있다가 셋이서 에펠탑을 구경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파리가 처음이라 에펠탑에 올라가 전경을 보고 싶었다. 에펠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는 기분 좋게 멋졌다. 시야는 막힘이 없어 시원하고 도심 여기저기에 키 큰 나무들이 서 있고 센 강이 흐르고 건물들은 잘 구획 정리되어 있었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구획 정리된 파리를 만든 건 1852년부터 1870년까지 집권한 나폴레옹 3세이다. 그는 오스만 남작을 행정 책임자로 임명해 파리를 개조했다. 성벽을 헐고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을 없애고 대로와 광장과 교차로를 만들었다.


에투알 개선문이 서 있는 드골 광장에 12개의 대로를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도로를 따라 수도관과 하수도관, 가스관을 설치하고 건물을 도로와 나란히 짓게 해 오늘날의 잘 정돈된 모습을 갖추게 한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과 계단

높은 곳에서 파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또 하나가 몽마르트르 언덕이다. 19세기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았던 동네이다.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는 보불전쟁 때 국난극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시민들이 돈을 모아지었다는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는데, 성당에 오르는 계단에 앉아서 우리는 파리 여행자들이 그러하듯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2017년)

오르세 미술관에는 19세기에 파리에서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작품들이 주로 모여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르세 미술관이 참 좋았는데 우선, 센 강이 흐르는 도로변에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 건물이 멋졌고 고흐, 드가, 르누아르, 모네, 세잔, 시냑 등의 그림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2017년)

파리 시내에서 벗어나 있지만 파리를 여행하면서 꼭 들르게 되는 곳이 베르사유 궁전이다. 루브르 궁전에서 지내던 부르봉 왕가의 루이 14세가 50년 동안 지어서 1682년에 이사했다는데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집이다. 작가가 바라보았듯이 내가 본 베르사유도 과하게 화려하고 호화스러웠다.


작가의 표현대로 '과시적 소비'의 전형이 베르사유 궁전과 부르봉 왕가의 생활방식이라면 대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치요 생활방식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 명소로 여행자들이 숲에서 산책을 하고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고 화려함의 극치인 ‘거울의 방'을 구경하는데 나는 베르사유 궁전 건물과 정원을 돌아보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착잡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극대치로 과시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자연스러움을 거스른 극단적인 인위성에 눈이 즐겁기는커녕 마음이 불편했던 게 아닌가 싶다.

파리의 센 강 주변

파리는 아테네와 로마, 이스탄불만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 베르사유를 볼 수 있고 로코코 양식을 만들어낸 도시이다. 특히 대혁명을 거쳐 19세기에 문화의 꽃을 피운 도시로서 볼거리와 느낄 거리가 차고 넘치는 도시이다.


그래서 나에게 파리는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이기도 하다. 다음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오르세 미술관을 천천히 걸으며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산책하듯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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