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2>(출판사 생각의길)를 발견했다. 올 7월에 발행된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내가 아직 가 보지 않은 도시들이 실려 있다. 유시민이 쓴 여행기가 궁금해서 1권을 찾아 같이 빌려왔다.
유시민은 국회의원으로 복지부 장관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다가 다시 작가로 돌아왔다. 예전에 내가 논술교재로 활용했던 책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썼던 작가가 본 유럽 도시의 풍경이 궁금해서 1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서문에서 작가는 스무 살 무렵부터 주로 유럽의 도시들이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각각의 시기에 유럽의 문화수도 역할을 했던 네 도시, 아테네와 로마, 이스탄불과 파리를 여행하며 도시와 건축과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19년에 발행된 이 책은 작가가 밝혔듯이 관광 안내서와 인문학 기행이 함께 섞여 있는 여행 에세이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책을 읽는다면 도시의 건축물과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여행지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여행의 추억과 함께 자신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건과 인물과 도시의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네 도시 중에서 파리와 로마를 다녀온 나는 두 도시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면서 책을 읽었고 아직 가 보지 않은 아테네와 이스탄불은 작가가 보여주는 도시의 풍경과 작가가 들려주는 도시의 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었다.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순서로 편집되어 있는 책을 따라가며 나는 여러 가지 정보 중에서 인상 깊게 만났거나 호기심이 일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써 나갈 것 같다.
아테네
이 책에는 도시를 소개하는 글의 첫 장마다 도시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여행 다닐 때 그러했듯이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지도를 먼저 살펴보고 도시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며 글을 읽었다. 그러면 여행자의 동선이 그려지고 방향이 느껴져 정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아테네 지도와 파르테논 신전<유럽도시기행1>
B.C.5세기에 만들어진 아테네는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부침이 많았던 도시인 듯하다. 작가는 꼬마열차를 타거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테네에서 꼭 봐야 할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플라카 지구와 박물관 등을 다녔다. 아테네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부분은 파르테논 신전의 흥망성쇠다.
동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고대 그리스가 2,500년 전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 봉헌하는 신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다. 하지만 파르테논 신전에서 그리스의 신 아테나는 쫓겨나고 로마제국 시대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 파르테논은 교회로 사용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지배했을 때 파르테논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1687년, 베네치아 군대가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아테네에 와 전쟁을 하는 와중에 포탄을 맞고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은 14개가 무너지고 지붕이 사라졌다.
200년 후에는 영국 외교관 엘긴이 신전에 남아 있던 부조마저 떼어가 잘리고 뜯기고 약탈당한 파르테논은 19세기 중반까지 무너진 돌덩어리로 버려져 있었다. 1980년대 이후 그리스는 반환 요구를 했지만 영국은 거절한 채로 여전히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엘긴의 대리석’(엘긴 마블스)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중이다.
그리스의 배우이자 문화부 장관이었던 멜리나 메르쿠리는 엘긴의 대리석을 돌려받으려 분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다. “‘엘긴의 대리석’이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것은 ‘파르테논의 대리석’이다.”
서양 문화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는 칭송이 무색하게 지금은 기둥만 남은 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발길을 사로잡는 파르테논 신전의 운명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조각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었던 파르테논이 아테네와 그리스가 겪었던 풍파를 함께 겪은 일들은 19세기 열강들 틈바구니 속에서 약탈당하고 기어이 일제 치하에서 설움 받던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영국이 약탈해 간 아름답고 우아한 파르테논의 부조와 조각품들이 원래 있던 아테네로 돌아가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분이 되어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길 바라지만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빼앗긴 것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나는 아테네에 가 보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로마
작가는 다른 도시에 비해 로마가 특별한 점을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밝힌다. 첫째는 고대 유적의 규모가 다른 도시에 비해 많고 예술적 기술적 수준이 높다는 점, 둘째는 바티칸 교황청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과 예술품을 품고 있다는 점, 셋째는 19세기 후반에 출현한 이탈리아 국가 수립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내가 본 로마의 콜로세오(2014년)
로마에서 고대 유적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콜로세오와 포로 로마노이다. 고대 건축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깊고도 세밀하다. 콜로세오와 그것을 만든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포로 로마노를 거닐면서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암살당한 카이사르와 로마 제국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베네치아 광장 앞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돌아보며 마치니와 가리발디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이탈리아가 어떻게 태동했는지 이야기해 준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이 책을 단순한 여행기로만 볼 수 없을 거 같다. 여행자가 인문학적 식견을 가지고 도시를 여행할 때 건축물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볼 수 있는지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바라본 포로 로마노
로마를 여행할 때 나 역시 포로 로마노에 들렀는데 포로 로마노는 그 사이사이를 거닐며 고대 로마의 거리를 상상해 보는 것도 좋지만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포로 로마노의 전경을 바라보는 풍경이 나에게는 훨씬 좋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하고 장엄한 폐허가 저 멀리까지 펼쳐진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역사의 흥망성쇠와 인생무상,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와 공간을 달리 한 곳에서 느끼는 감회 같은 것들….
카피톨리노 박물관 조각상들
포로 로마노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카피톨리노 박물관은 1734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문을 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라 한다. 콘세르바토리 궁전과 누오보 궁전 두 개로 이어져 있는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상과 회화를 수십만 점 보유하고 있다. 어딜 가나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로마에서 여유롭고 한적하게 궁전을 거닐면서 아름다운 조각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들을 즐길 수 있었던 이 박물관이 나에게는 참 좋았다.
로마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콜로세오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들여다보고 판테온 신전의 돔을 바라보고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계단의 번잡함을 경험했다. 나보나 광장의 분수와 조각상들,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함을 구현한 성 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도 떠올렸다. 작가는 로마를 전성기를 다 보낸,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고 긍지를 가지고 있는 은퇴한 사업가로 비유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로마는 혼자 간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집중과 몰입감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작가를 따라 로마를 읽는 것은 오래된 건축물을 다시 만나고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예술품들을 뒤적여보고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을 떠올려보는 추억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