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기차역이 있고 버스터미널이 있던 시내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 시내에서 기찻길을 따라가다 보면 구시가 나온다. 옛적의 구시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부근에 포구가 있어서 사림들로 붐벼 시내 역할을 했을 터인데 기차역이 생기고 포구는 사라져 옛 시내라는 의미로 구시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시내에서 구시에 가려면 철길을 건너야 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철길을 건너려면 경적이 울리고 신호등은 빨간불을 깜박거리고 신호대가 내려와 길을 막았다. 길을 건너려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는 일상이었던 일들이 세월이 흐른 후 돌아보면 낭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경적소리와 가던 길을 멈추고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잠깐의 시간과 친구집을 향해 철길을 건너던 기억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흑백필름의 잔상처럼 남아있다.
시간이 흘러 도시 확장사업으로 기차역도 버스터미널도 시내에서 먼 지역으로 옮겨졌다. 새로 지어진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넓고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도시를 확장시킨 만큼 인구가 늘진 않아서 시내는 구도심이 되어 버렸다.
신도심에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고 관공서가 옮겨가면서 구도심은 점점 쇠퇴해 갔다. 포구가 있어서 흥성거리던 구시가 옛 시가지가 된 것처럼 시내 역시 신도심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구도심이 된 것이다. 기차역은 내어주고 기찻길은 녹슬어감에 따라 시내도 구시도 사람이 줄었다. 더구나 철길 근처 구시는 방치된 집들과 흉물스러운 폐가가 늘어나 지나다니기 꺼려지는 지역이 되어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몇 년 전부터 도시재생사업이 활성화되면서 구시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공공의 지원으로 사회, 경제,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법을 모색하거나 주거 환경을 개선하거나 거주자 중심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을 한다.
우리 동네 철길 공원
그러한 도시재생사업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철길 주변에 공원이 만들어졌다. 산책로가 조성되고 그 주변에 나무와 꽃이 심어지고 벤치가 놓였다. 조각 작품이 놓이고 초가를 인 정자도 지어졌다. 산책로 중간에는 폐선된 철로를 남겨두어 예전에는 이곳이 기찻길이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요즘에는 공원 길가에 초등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전시해 놓았다. 도서관 가는 길에 보게 되는 동심이 꿈꾸는 마을과 공원 풍경을 그린 아이들 그림은 기특하고 예쁘다. 그래서 변화된 철길 풍경을 사진 찍어 와 그려 보았다.
철길공원 사진
철길 공원 어반드로잉
철길 공원을 나와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오래된 집들과 방치된 폐가가 있다. 요즘에는 도시재생사업으로 노후된 벽에 벽화가 그려지거나 캘리그래피가 어우러져 주변 환경을 산뜻하게 바꿔놓고 있다. 그래서 낡고 지저분한 골목길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있는 정겹고 산뜻한 골목길로 바뀌고 있다.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길가는 사람들에게도 예술이 생활 속에 들어와 있어 보기 좋은 풍경이다.
디리가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소박하고 자그마한 마을미술관이 보인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직 개관 전이라 전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인생그림책을 만들거나 세밀화 그림 프로그램이 있었다.
전시 준비를 하고 있는 그림들은 마을 주민들이 그린 거라고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 마을 주민인데 그들은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그림을 나이 들어서 처음 배우고 그려 보았을 것이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다소 어색하게 시작한 그림 그리기에 맛을 들이고 재미를 알아가며 선을 긋고 모양을 그리고 색을 칠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들은 소박하고 정겨웠다.
마을미술관은 그런 공간이 아닌가 싶다. 마을 주민들이 그림을 배워서 그리고 전시회를 여는 곳,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서 누구나 참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런 마을 미술관을 만난 게 반가워 나는 마을미술관이 있는 골목길 사진을 찍어와 그려 보았다.
마을미술관 골목 어반드로잉
전봇대 뒤로 자그마한 마을미술관이 새로 들어섰다. 아마도 낡은 폐가를 허물고 지어졌을 것이다. 덕분에 골목이 밝고 환해졌다. 이곳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울려 그림을 배우고 소박한 전시회도 갖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도시의 미술관을 꼭 들렀다. 덕분에 런던에서는 루벤스와 고흐를, 뉴욕에서는 앙리 마티스와 잭슨 폴록을, 로마에서는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를, 파리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들라크루아를, 피렌체에서는 보티첼리를, 베네치아에서는 르네 마그리트를, 바르셀로나에서는 피카소의 그림을 만났다.
시대의 천재들이 남긴 그림을 보면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크거나 섬세하고, 웅장하거나 신선하거나 아주 인상적이어서 넋을 놓고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루브르나 우피치, 시스티나 성당이나 내셔널 갤러리, 메트로폴리탄을 가기 위해 열몇 시간씩 경유를 하며 비행기를 타곤 했던 것 같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그린 훌륭한 그림은 여전히 만나고 싶어서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벨라스케스나 고야, 클림트나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러 갈 테지만 요즘에는 작고 소박한 미술관도 좋다.
아마도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시작된 변화가 아닌가 싶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힐링이 되는 경험을 했고 사물과 자연을 자세히 바라보게 되었다. 물론 눈과 손이 따로 노는 경험을 하며 실망도 여러 번 했지만 그건 욕심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그냥 그렸다. 대상을 관찰하고 표현과 색에 대해 고민하며 그리는 순간을 즐겼다. 그렇게 눈높이를 낮추게 되니 그림을 완성했을 때 성취감이 느껴졌다.
다 그리기까지 구성하고 고민하고 색을 고르며 칠하는 과정은 전문가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나 초보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시도해 보려는 마음과 실망을 극복하고 도전하려는 마음을 알기에 나는 마을 사람들이 전시하려고 내놓은 그림들을 응원해 주고 싶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시도해 보고 그 결과물을 전시하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