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마을 어반드로잉

내가 사는 마을 그리기

by 밝은 숲

지난 두 달 여 동안 이문구의 연작소설집 <관촌수필>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관촌마을의 골목길을 산책했다.


20여 년 동안 이 동네에 살았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좁은 골목길을, 언덕배기에 있는 오래 방치된 흔적들이 있는 집들을 살펴보았다.

오래된 주황색 기와, 녹슨 하늘색 대문, 가파른 골목 계단들...... 낡고 오래되고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러나 오래전 어느 때인가는 누군가의 소중한 보금자리요 생활의 터전이었을 그 집들을 둘러보고 바라보며 마음이 한순간 뭉글했다.


그래서일까, 관촌마을을 산책하며 골목길 풍경을 남기고 싶었다.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는 어느 날, 오후의 햇볕으로 왼쪽의 노란 벽이 오렌지빛을 발하고 뒤쪽에 적벽돌로 지은 오래된 연립주택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노란색 담장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사진으로 담아 온 여러 골목길 중에서 노란색 담장이 있는 골목길을 그려보기로 했다.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로 펜드로잉을 먼저 하고 빨간색 벽돌과 파란색 하늘과 노란색 담장을 수채물감으로 칠했다.


앞 계단에는 화분 두 개를 임의대로 그려 넣었다. 그렇게 관촌마을의 골목길 풍경 하나가 완성되었다.




요즘에는 동네마다 자투리 땅이나 공터를 이용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어 놓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마을에도 마을 이름을 따 관촌공원이 만들어졌다. 크지 않은 공원에는 자작나무 몇 그루, 메타세쿼이아나무 몇 그루, 소나무, 벚나무 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꽃들이 심어져 있다.


그리고 눈에 띄는 벤치 하나가 있다. 보령을 대표하는 작가 이문구 선생님의 책 제목이 책꽂이처럼 등받이로 만들어져 있는 벤치이다.


나는 벤치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공원에 앉아 누구나 쉴 수 있는 벤치, 관촌마을의 개성을 나타내주는 벤치를 그려 보았다.

벤치가 주인공이므로 벤치 뒤에 있는 키 큰 나무들은 생략하고 대신 하얀 구름이 둥실 떠 있는 파란 하늘로 색을 입혔다.


이문구 선생님의 글과 책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공원 벤치에 앉아 한 권의 책을 읽는 생활의 여유를 누구나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벤치를 주인공으로 관촌공원 풍경이 완성되었다.




관촌마을에는 갈머리부락이 있다. 그리고 갈머리 부락에는 마을 이름을 딴 갈머리방앗간이 있다.

도로에 면한 앞면은 조립식 패널로 지어졌고 좁은 골목길에 면한 옆면은 붉은 슬레이트에 세월의 더깨가 잔뜩 묻어있다. 심지어 붉은 슬레이트는 여기저기 기운 흔적들이 여러 곳이다.


요즘의 나는 오래되어 낡고 녹슨 것들에 알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처음에는 저들도 반짝거리는 때가 있었을 테고 시간의 작용으로 낡고 녹슬어가고 있는 것이 나이 들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공감이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이 먹은 갈머리방앗간을 그려보았다. 나이 든 옆모습에는 건물의 정체성이 나타나지 않아 맞은편에서 본 앞모습을 그렸다.

표준어로는 방아간이 아니라 방앗간이 맞지만 방앗간 주인이 만들어 걸었을 간판 이름 그대로 '갈머리방아간'으로 그려 넣었다.


설이면 흰 가래떡을 빼고 추석이면 송편을 만들고 들깨로 들기름을 짜고 참깨로 참기름을 짜고 붉은 가을 고추로 고춧가루를 빻는 방앗간이 동네 사람들에게 방앗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동네 방앗간을 그리면서 나는 오래된 것들이 반짝이는 새것들 속에서 주눅 들지 않고 제 역할을 하며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 역할이 꾸준히 이어져 전통이 되고 내일로 향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오래된 동네를 산책하고 그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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