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잣집에 대한 기억

박수근을 그리고 쓰며

by 밝은 숲

지난 가을에 어반드로잉을 배우며 집과 건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따라 그려보고 싶은 그림들을 찾다가 박수근의 <판잣집>을 보게 되었다. 단순한 선들, 오래 보고 있으면 따듯함이 느껴지는 색감들, 복잡하지 않은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해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알려진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우리 현대사에서 고난의 시기를 살면서 그는 50여 년 동안 4백 여 점의 그림을 남기고 1965년에 생을 마감했다.


한국전쟁 중 미군 PX에서 미군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활비를 벌었던 그는 창신동에 작은 판잣집을 마련하고는 초상화 그리는 일을 그만둔다. 그리고 집 마루를 작업실 삼아 자기 그림에 몰두한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해 18살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서 화가가 된 그에게 그림은 살아가는 이유였고 한국의 밀레가 되고 싶었던 화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박수근의 그림 소재는 언제나 주변 풍경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1950년 대의 서울은 전쟁의 상흔으로 피폐했고 사람들의 삶도 고단했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에는 광주리를 인 여인과 노상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아낙네들과 동생을 업고 있는 어린 여자애들이 보인다.

박수근 <판잣집> 1950년데 후반

그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화가가 돈을 벌어 산 집이 창신동의 작은 판잣집이듯 그들 역시 산등성이에 올라앉은 판잣집에서 살았을 것이다. 널빤지를 대강 잘라서 벽과 문을 만든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았을 것이다.


내가 본 박수근의 <판잣집>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50년대 후반에 그린 것이라 추정되는 위쪽에 초록빛 나무가 있는 판잣집 그림이다. <판잣집>에서도 박수근 특유의 토속적이면서 화강암 같은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이 거친 질감은 유화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벽과 지붕에 칠해진 색들의 다양함이 여러 번 덧칠한 흔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한 번 칠하고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고단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박수근 그림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다운된 느낌인데 전쟁이 끝나고 먹고살기 팍팍한 시대에 화가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나타낸 색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둡고 우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서가 담긴 듯 토속적이고 정적이며 따뜻하다.


박수근의 <판잣집>을 수채화로 표현

나는 박수근의 <판잣집>을 수채화로 표현해 보았다. 수채화는 거친 느낌을 낼 수 없어서 밋밋한 감이 있지만 색감은 원본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채도가 낮은 무채색 느낌으로 칠했다. 그러나 군데군데 원색의 빨강과 노랑을 넣어서 고단한 가운데 삶의 활기와 희망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선생의 판잣집 그림은 초록이 무성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봄이나 여름이 아닐까 싶은데 나의 수채화는 겨울에 그려졌으므로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로 그렇지만 봄을 기다리는 나무를 표현했다.


박수근의 <판잣집>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표현

나는 또 원본의 거친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디지털 페인팅을 시도해 보았다. 아이패드에는 프로크리에이터라는 앱이 있다. 거기에서 목탄 브러시를 찾아 그려 보았더니 원본과 비슷한 거친 질감을 찾을 수 있었다.


선생은 유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한참 지나 다시 덧칠을 하고 또 덧칠을 하는 수고를 했을 텐데 그때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지금 기술 문명의 발달로 나는 앱 속에 만들어져 있는 팔레트에서 색을 찾아 펜슬로 한 번 칠하고 다시 팔레트에서 다른 색을 찾아 칠하는 방식으로 여러 번 덧칠한 효과를 냈다.

박수근의 <판잣집> 1956년

1956년에 그려진 박수근의 또 다른 <판잣집> 그림이 있다. 화가 특유의 화강암 같은 질감이 토속적이고 마애불과 같은 색조는 거칠지만 따듯하다. 어둡고 좁고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이 그림에는 가난하고 낮고 고단한 삶들이 벽과 창문과 문틀에 묻어 있을 것만 같다.


박수근의 <판잣집>을 색연필로 표현


1956년 작 판잣집 그림은 수채화 종이에 색연필로 그려 보았다. 수채화지의 우둘투둘한 표면에 색연필을 입히니 거친 질감이 나타났다. 원색의 색연필을 여러 겹 입혔다. 그리고 틈틈이 회색과 흰색, 갈색을 덧입히면서 당시 이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버지나 삼촌, 장성한 아들은 전쟁으로 죽거나 다쳤을 거고 엄마는 집에 있는 물건을 광주리에 이고 장에 나가 팔아서 저녁거리를 마련할 것이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단발머리 어린 소녀는 포대기에 동생을 업고 장에 나간 엄마를 밖에 나가 기다릴 것다. 일제 치하에서 고된 노역을 하고 전쟁에서 살아남아 어느새 늙어버린 노인들 역시 나무 아래서 지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렇듯 들고 팍팍한 하루를 보낸 그들을 맞아주는 것은 판잣집이다. 좁고 허름하고 추운 집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고단한 오늘을 누일 수 있는 보금자리요 꿈을 키울 수 있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화가가 작은 판잣집의 마루에 작업실을 만들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며 내일을 꿈꾸었듯이 말이다.


나는 그들의 거칠고 열악한 쉼터가 따듯하길 바라며 낮고 가난한 판잣집을 밝고 따뜻하게 칠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박수근 선생이 생전에 말한 예술에 대한 이 견해가 나에게는 무겁고 진중하게 들린다. 인간에 대한 선함과 진실함을 믿으며 살아가고 그 믿음을 그리면서 살았을 삶의 무게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다.


마애불의 미소와 색조가 담긴 가난했던 화가의 평범함에 대한 그림은 선과 진실에 대한 추구심으로 인해 더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그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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