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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Feb 28. 2024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

어반스케치로

여러 해 전에 파리를 여행한 적이 있다. 살다가 사는 일이 뭔가 싶을 때 혹은 그동안 애쓰며 산 나에 대한 위로로 유럽을 다녀오곤 했는데 그때는 파리를 택했다. 내가 파리에 가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그동안 읽은 책들 속에서 파리는 문학과 철학, 예술의 도시였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집을 방문하고 싶었고 발자크와 에밀 졸라의 문학 작품, 질 들뢰즈와 미셸 푸코, 사르트르와 시몬느 보부아르의 철학이 만들어진 도시를 보고 싶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자리 잡고 그림을 그리며 살던 무명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흐의 그림을 보고 싶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다비드, 들라크루아와  렘브란트의 그림이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꼭 보고 싶었다.

루브르

나는 일주일 동안 파리에서 보낼 여행 일정을 짜 동생과 함께 파리로 향했다. 한인 민박집을 숙소로 잡고 미술관과 박물관, 에펠탑과 개선문을 보러 다녔다. 동생 역시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는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주리와 퐁피두 센터의 그림들을 함께 즐겼고 감상평을 나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들을 먼저 감상하고 고흐가 마지막을 보내고 잠들어 있는 곳, 파리 근교에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다녀왔다. 파리 북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여 걸렸던 것 같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작고 아담하고 소박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고흐 공원

마을 광장에는 시장이 열려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아 빵집에서 빵을 사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9월의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야외에서 빵으로 때우는 점심은 스산했지만 지나서 생각하니 고흐의 흔적이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점심은 특별한 것이었다.


마을은 작아서 걸어 다니기 좋았는데 우리는 고흐가 살았던 다락방에 가 보았다. 너무 작았고 너무 좁아서 초라했다. 그 작은 공간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구나… 동생 테오가 보내준 돈으로 생활하며 그림을 그려야 하니 이렇게 살았구나, 싶어서 가난한 예술가로서의 삶이 애잔했다.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생의 마지막 70여 일을 살면서 8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하루에 한 점 이상씩 그린 셈이다. 엄청난 집중력이고 어마어마한 열정이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힘들었을 거고 그렇게 그림을 그려야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흐의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인 벌판에 가 보았다. 그림 속에서 하늘은 어둡게 푸르고 까마귀는 떼를 지어 어둠 속으로 날아가고 밀밭은 노랗게 익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 벌판에는 대파가 심어져 있었고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밀밭 아닌 파밭은 푸른 기운으로 넘실거렸다. 고흐의 자취를 따라나선 프랑스의 한적하고도 작은 마을에서 푸른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흐 형제의 무덤

언덕에 있는 마을 공동묘지에는 고흐 형제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형 빈센트 반 고흐가 1890년에 생을 마감했고 동생 테오는 그 이듬해인 1891년에 사망해 형제는 함께 묻혀 있다. 고흐 형제의 무덤에서 여러 가지 상념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40년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들이 안타까워서일 것이다.


형의 그림을 알아보고 경제적으로 지원해 준 동생 테오와 동생에게 신세 지며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게 언제나 미안하고 마음 아팠을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을 빈센트… 형제의 우애가 고흐가 그린 그림에 들어가 그림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고흐의 마음은 그림 속에서 언제나 반짝거리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고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

고흐의 그림 중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 그림에  나는 자꾸 마음이 간다. 어두운 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마을 교회가 서 있는데 교회 지붕은 하늘로 올라갈 것처럼 꿈틀거린다. 교회 앞마당에 피어 있는 꽃들도 교회 옆으로 난 길들도 꿈틀거린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열정 넘치는 꿈틀거림, 혹은 꿈틀거리고 꿈틀거려서 생동감 있게 살고 싶다는 열망... 그런 것들이 굵은 선과 선명한 색채 대비 속에서 느껴진다. 모자 쓴 여인이 얼굴을 보이지 않고 뒷모습으로 외로운 길을 걸어간다. 이런 모든 것들이 마음 아프게 와닿아서 아름다운 그림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

고흐 그림 속 배경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는 마을을 닮아서 소박했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어 아늑하고 편안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 나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고흐가 그렸던 교회를 어반스케치 느낌으로 그려보기로 한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 어반스케치(2024)

사진으로 남아 있는 여행의 풍경을 기억하면서 교회를 스케치해 나간다. 건물 윗부분에는 고흐가 묘사한 교회 시계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고흐가 그린 교회 지붕은 어둠이 담긴 청색이 많지만 내가 본 오후의 교회 지붕은 세월의 흔적이 묻은 붉은빛이 감돈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는 모자를 쓴 한 여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왼쪽길로 걸어가는데 내 그림 속 길에는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걸어 다닌다.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온 나와 같은 여행자들일 것이다.


하늘은 흐려서 먹구름이 끼어 있지만 언뜻언뜻 푸른빛을 보여준다. 삶이 언제나 흐리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희망으로 해석하며 수채 물감으로 내가 느끼고 본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를 그린다.


고흐 형제의 무덤에서 느꼈던 삶과 죽음, 푸른 벌판의 생명력, 작고 소박한 마을의 아름다움, 오래된 교회의 고즈넉함을 그린다. 동생과 둘이서 다녔던 모든 것이 처음인 여행길의 새로움과 낯선 긴장감들을 떠올린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떠났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여행이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추억으로 쌓이고 있다. 그림을 그리며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그것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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