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토월 - 석공의 삶 그리고...

이문구 <관촌수필> (문학과지성사)

by 밝은 숲

이문구의 연작소설집 <관촌수필> 중 다섯 번째 이야기 ‘공산토월’은 1973년 문학계간지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실렸다. 빈 산이 달을 토해 낸다는 뜻을 가진 ‘공산토월’은 제목에서조차 허망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 속 화자에게는 잊지 못할 사람, 두고두고 기억될 사람으로 더위에 늘어지지 않고 장마에 물러지지 않으며 추위에 움츠러들지 않고 바람에 가벼이 날아가지 않는 돌과 같은 성정을 지닌 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따로 있지만 돌을 좋아하고 돌과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화자는 그를 석공이라 부른다. 화자가 일곱 살이던 해 가을, 석공이 장가를 들게 되었다. 1940년대 후반이니 결혼식은 집 마당에서 하는 게 예사라 신부는 연지곤지 찍고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고 석공네 집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밀짚방석에 앉은 동네 어른들은 국수상을 받고 일가친척들과 동네 아낙들은 전을 부치고 음식을 나른다.


늦은 밤 어린 화자는 석공네 잔치집에서 주안상 가장자리를 두들겨가며 노래하는 아버지를 보게 된다. 토정 이지함의 후손으로 동네 누구네 집 울안에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더구나 일갓집에서 행랑살이를 했던 신서방네 울안에 들어온 것도 처음 있는 일인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더해 어깨춤까지 덩실거리는 아버지 모습이 어린 화자에게는 낯설고 거북하지만 경이롭고 황홀한 일이기도 했다.


화자의 아버지는 대천 장날 수천 군민이 모여든 강연장에서 불을 뿜는 웅변가로 청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분인데 그렇게 어렵기만 한 아버지가 석공의 결혼식날 잔칫상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함께 했다는 것이 당사자인 석공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석공은 화자의 아버지가 좌익 활동으로 연행되어 구금되었을 때 하루 세끼 사식을 만들어 경찰서까지 직접 가져다주곤 했다. 또한 화자의 아버지가 연행될 때마다 석공도 경찰서에 불려 가 아버지를 따르고 존경한다는 이유로 취조를 당하고 고문을 당했다.


6.25 전쟁이 터지고 화자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가을이 되어 인공 치하에서 석공은 군청 서기가 되었다. 인민군이 다스리던 시절이니 아버지 일로 당한 보상 차원에서 그런 직책이 주어진 것일 텐데 그 때문에 석공은 인민군이 물러나고 경찰이 치안 담당을 하게 되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5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수형 생활을 하면서 석공이 그리웠던 것은 가족 다음으로 쇠스랑과 낫과 호미였다. 탈곡기 소리와 도리깨 소리였다. 그렇게 일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니 모범수로 4년 6개월을 살고 나와 석공은 부지런히 일을 했다. 자신의 농사일 뿐만 아니라 마을의 궂은일도 도맡아 처리했다.


이를 테면 죽은 아이의 관을 지고 올라가 매장하기, 피투성이 송장 업어 나르기, 상한 시체 염 하기, 썩은 관 뜯어내기, 삼복더위에 무덤 파는 일 등 마을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어렵고 꺼림칙하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일들에 석공은 몸을 사리지 않았고 손과 발을 먼저 내밀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화자는 집 안의 마지막 어른인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천식을 앓던 어머니를 위해 석공은 병에 좋다는 약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용하다는 의원을 수소문하며 정성을 들였다. 결국 돌아가신 화자의 어머니 수의를 입혀준 것도 봉분을 세운 것도 뗏장을 입힌 것도 석공의 손에 의해서였다.


집 안 어른을 모두 여읜 화자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화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석공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어갔는데 3대에 걸친 집안의 불행을 뒤치다꺼리해 준 석공이 화자에게는 이웃사촌을 넘어선 은인이요 정과 신의로 뭉쳐진 공동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화자가 대학에 다니던 60년대 초반, 석공 부부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와 화자의 집을 찾았다. 그동안 석공은 일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부지런히 일 해서 논을 사고 밭을 늘려갔다. 고생한 아내에게 그 당시 사치품이던 나일론 옷을 사 주고 송아지 한 마리 사들이기보다 어렵다는 라디오를 장만할 정도로 살림살이가 피었다.


그런데 농사일이 한창일 때 부부가 서울에 올라왔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현기증이 나고 가끔씩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는 석공의 얼굴은 수척했고 초췌해 보였다. 종합병원에 갔지만 병명을 모른 채 석공은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석공의 아내가 쓰러지듯 화자의 집으로 달려왔다. 석공이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않아 택시를 대절해 서울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전했다. 인공호흡기를 끼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석공의 병명은 백혈병이었다.


약도 구하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에 화자는 처방전을 들고 서울의 약국을 모조리 훑고 다녔고 밤에는 병원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석공을 보살폈다. 석공이 화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했듯이 대학생인 화자는 석공을 살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낮에는 발이 부르트도록 약을 찾아 헤매고 밤에는 저승신이 석공을 데려갈까봐 조마조마하며 잠도 못 자고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얼마 안 남았으니 퇴원하라는 말로 마지막 선고를 대신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의식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와중에 석공은 집에 가라는 의사의 말이 자신의 마지막임을 알았다.




“나는 살구 싶은디, 살구 싶은디 그여 데려가네…… 늙으신 부모를 두구 먼저 가다니, 어린 새끼들은 워칙허라구 나를 데려가까……”


“안 되여, 나는 살으야 되여, 나는 살구 싶어, 내가 죽으면 안 되여…… ”


“여게, 줘매, 얼릉 대천 가서 논 팔어와…… 밭두 팔구 집두 팔구…… 싸게 가서 돈 맹글어오란 말여…… 나버텀 살구 봐야겄어…… 이대루는 억울해서 죽을 수 웂당께……”


“자네 나를 이러긴가, 나 좀 살려주게, 더 살구 싶어……”


“놔둬라, 놔둬. 여게, 이늠으 여편네, 집에 가지 마. 절대루 가면 안 되여…… 내 한 몸 살자구 논 팔구 밭 팔면 새끼들은 뭣 먹구 사네, 새끼들 멕이구 ……그것들 가르치야지…… 팔지 마, 팔먼 안 되여…… 차라리 이냥 죽을텨. 나 하나 죽구 여러 목숨 살으야지……” (p 249~250)




아무리 어질고 선량한 사람이라도 남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던 사람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살고 싶어 몸부림치고 살고자 의지를 불태우고 왜 벌써 데려가냐고 발악하고 억울해서 안 되겠다고 아우성치고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고 처절하게 애원한다.


더구나 석공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일곱... 나이 어린 자식들이 셋이나 있고 그의 말대로 늙으신 부모님도 계신데 먼저 가라니…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심정, 죽음을 선고받은 그 현실,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가진 재산 다 팔아서라도 살고 싶다는 마음과 내가 가야 남아있는 식구들이 살 수 있다는 생각과 그러나 왜 벌써 가야 하나 하는 마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아우성쳤을 것이다.


부모님이 떠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고 여동생이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본 나로서는 석공의 울부짖음과 처절함과 고통이 눈에 선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살아 있는 자는 숙연해진다. 죽어가는 이가 너무나 좋은 사람이어서 슬프고 한창나이여서 안타깝고 어질고 선한 사람이어서 더 애달프다. 그렇게 울면서 화자는 석공을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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