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추정 - 여우는 왜 바다로 갔을까

이문구 <관촌수필> 여섯 번째 이야기

by 밝은 숲

꿈결에 어린 화자는 갓난아기가 숨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듣는다.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는 새벽녘, 여우는 애장터에 묻혀 있는 죽은 아이의 울음처럼 어린 화자의 꿈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마음이 한껏 움츠러든 새벽이면 으레 대복이가 찾아와 어린 화자를 꿈속의 공포로부터 구해준다.


바다에 빠진 여우 잡이를 구경하기 위해 잠도 깨지 않은 눈을 하고 어린 화자는 달리는 대복이 등에 업혀 개펄로 간다. 소금막 마당에는 이미 한가한 동네 사내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여우가 안개에 길을 잃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개펄에 빠져 못 나온다고 믿는 이들이다. 그들의 손에는 몽둥이나 작대기, 도리깨자루가 들려 있다. 만배 아버지, 봉대 아버지, 송방 주인, 대복이까지 여우를 발견하면 개펄에 뛰어들어 몰이를 하거나 손에 쥔 몽둥이로 때려잡을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복산 아버지만은 늘 빈손이다. 개펄에 빠진 여우가 눈앞에 보이더라도 그는 구경만 할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집집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에 이를 테면, 모를 심거나 밭이랑을 고르거나 추수할 적에 힘을 쓸 수 없다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 그이기에 동네 사람들은 그를 사람으로 쳐 주지 않는다. 심지어 동네 아이들과 개조차도 그를 피해 다닌다. 대복이와 옹점이도 그를 더럽고 추접스러운 이, 우스운 이로 여긴다.


그러나 어린 화자에게 복산 아버지는 추접스러운 이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우기고 싶을 만큼 그를 좋아한다.


복산 아버지, 유천만은 일제 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 고생이 자심했다. 그로 인해 병을 얻어 복막염을 앓았고 늑막염은 깊고 잔기침은 쉴 새 없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곤 한다. 그는 남들 다 하는 일은 나 몰라라 했고 남이 다 치르는 일도 혼자 외면하며 살아가는 덕분에 아내가 가장 노릇을 한다. 묵집이라고 불리는 유천만의 아내는 도토리나 상수리를 따서 묵을 쒀 복산이 복희 남매를 키우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허구한 날 문지방을 퇴침 삼아 방구석에 누워 있는 유천만이 힘을 쓰며 맨 먼저 걷어붙이고 나서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남들이 모두 꺼리고 기피하는 일, 엄두도 못 낼 일에 대해서다. 심지어 그는 누구네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부르기 전에 그 자리에 가 있곤 한다.


그 일은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돼지새끼 거세해 주기, 기르던 짐승 병들면 뒤처리해주기, 염소나 토끼, 개 잡아주기, 소나 돼지를 망치나 메로 쳐 쓰러뜨리고 멱을 따고 선지를 받고 껍질 벗겨 각을 뜨고 내장 추리기 등이다. 이런 일에 그의 품삯은 희나리 고기 부스러기나 비계 몇 점, 약간의 선지 등으로 보잘것없지만 그는 일에 품삯을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쥐어야 할 칼자루를 남이 쥐고 있는 꼴을 못 볼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일을 재미로 여긴다.


또한 유천만은 동네 초상집에서 밤샘해 주기 일쑤였는데 멀리까지 부고를 돌리고 상여 앞에 공포잡이로 서고 문간 사잣밥 치우는 것 또한 그가 즐겨하던 일이다. 제삿집에 온 거지들도 그의 눈에 띄어야 얻어먹을 게 있다.


길 잃은 여우가 개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애타게 우는 소리가 들리던 날 유천만이 죽었다. 가난한 살림은 관도 못 쓰고 거적때기에 말아 묻힐 거지만 마을 사람들은 초상난 집에 막걸리나 두부, 보리쌀, 장작 등을 부조하고 바쁜 농사철이지만 일손을 모두 놓고 초상집에 가 손을 보탠다. 마을에 초상이 났기에 옹점이는 빨래를 하지 않고 빨래를 널거나 다듬이질도 삼갔다.


살아서 사람 취급을 못 받았던 유천만은 죽어서 꽃상여를 타고 남편 잃은 복산 어머니는 개펄에 빠진 여우처럼 울었다. 유천만의 아들 유복산은 도토리를 주워 중학교에 입학하고, 성실성을 인정받아 사친회비를 면제받고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로 이사하고 소설가가 된 화자는 고향에 가게 되면 유복산의 집을 찾는다. 화자에게 복산은 소꿉동무일 뿐만 아니라 사미천이 <사기>에서 쓴 고향을 지키고 있어서 고향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제목 ‘관산추정’은 관산에 있는 풀과 고무래로 고향에서 꼴 베는 사람, 즉 고향의 옛 친구를 의미하는데 화자에게는 그가 유복산이다. 성실하고 마음 넓고 정자나무 그늘 같은 복산은 이제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고 야무진 일꾼이기도 해서 어엿한 섬지기 농군이 되었다.


오랫 만에 찾은 관촌마을에서 화자는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 뭉개진 부엉재 고개에는 여자중고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여우가 길을 잃어 우짖던 개펄은 간사지 논이 되었고 왕소나무 자리에는 농지개량조합 청사가 들어서 산과 바다조차 미덥지 못한 동네가 되어 있던 것이다.


옛 모습을 잃어버린 고향에서 화자는 오직 유복산만이 변치 않고 의연함을 발견한다. 복산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며 화자는 동네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듣는다.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 근무 하고 있는 경찰에게 밤참을 가져다주기 위해 복산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끓인 라면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본 화자는 복산의 뒷모습에서 그의 아버지 유천만을 떠올린다. 남들이 성가셔하며 하기 싫어하는 일을 골라 자청해서 치다꺼리해 주는 삶의 모습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을 본다.


유복산의 아버지 유천만은 마흔너댓에 세상을 떴다. 여우가 노루 올가미에 걸려 목이 졸리듯 극심한 잔기침을 달고 다녔던 유천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되도록이면 일을 안 하고 힘쓰는 일을 피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었고 함께 하는 일이 대부분인 농촌 공동체 사회에서 욕먹을 짓이었고 푸대접받아 마땅한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어린 화자는 질문한다. 여우는 왜 바다에 들어갔을까, 안개가 앞을 가려 눈앞이 막혔다 해도 죽을 자리인 바다로 들어간 이유는 뭘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다로 들어간 여우에게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복산 아버지 유천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마을에서 사람 취급을 못 받았던 그에게도,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한 그에게도 바다에 들어간 여우처럼 그만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바다에 들어간 여우도, 동네 사람들에게 사람대접받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뜬 유천만도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모든 생명이 에게는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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