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관촌수필> 일곱 번째 이야기
이문구의 연작소설집 <관촌수필>의 일곱 번째 이야기 '여요주서'는 1976년 계간문예잡지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실린 소설이다. <관촌수필> 속 다른 이야기들이 작가의 어린 시절인 1940년대 풍경을 주로 그렸다면 ‘여요주서'는 작가가 소설가가 된 후인 1970년대 풍경이 주로 그려진다.
관촌 마을을 떠나 살고 있던 화자는 고향에 들렀다가 몇 시간 뒤에 올 상행선 기차를 기다리는 중에 역전 거리에서 신용모를 만난다. 그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장정이 다 되도록 이웃해 지내던 사이인데 십수 년만에 만난 반가움도 있지만 무슨 신통치 않은 일이 있는지 갑갑증에 일그러진 표정이다. 그는 실없는 짓을 하다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며 사연을 털어놓는다.
신용모는 농투성이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 관촌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는데 그의 가족은 관촌부락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동네 개펄이 간사지 논으로 바뀔 무렵 수로가 그의 집을 쪼개며 지나게 되었고 논과 밭마저 수로로 들어가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준 보상금은 시가보다 헐하게 매겨져 그의 가족은 트럭 한 대 지나다닐 수 없는 하늘이 막힌 산골동네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보다 야생 동물이 더 흔한 산동네에서 밭농사를 짓는 것은 야생 동물과의 싸움이었다. 들비둘기와 꿩이 농작물을 망쳐놓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생 동물 보호령이 내려진 꿩의 행패는 가장 심했다.
오일장이 서던 날, 장에 가는 길에 용모는 동네 방앗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위뜸에 사는 동네 아이가 잡아온 장끼를 구경하며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이는 칡넝쿨로 올무를 해 놨더니 장끼 모가지가 옭혀 죽어 있더라고 그래서 몸이 아픈 아버지가 장에 가 팔아 오랬다는 얘기를 한다.
읍내 입구에 도착해 용모는 아이의 손에서 꿩을 넘겨받는다. 물건을 흥정하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리고 한 푼이라도 더 받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꿩을 들고 시장에 들어서자 누군가 흥정을 해 온다. 눈치가 없고 천성이 둔한 용모는 그가 잠복해 있는 형사인지도 모르고 흥정하기 위해 그를 따라가는데 그러는 동안 아이는 눈치껏 내빼고 없다.
따귀 몇 대 맞고 파출소에 끌려가 조사를 받으면서 용모는 자기가 잡은 게 아니고 이웃집 아이가 잡은 거라고 사실을 말했지만 형사는 믿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에게 덮어 씌운다고 욕을 얻어먹었고 허벅지와 엉덩이와 아랫배를 찍히고 밟혔다. 형사는 말했다, 내가 손버릇이 안 좋아서 그리 된 것이니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고, 이런 사건은 구속 입건 해야 되지만 특별히 봐줘서 즉결에 넘기는 것이라고, 나 같은 사람 만난 건 운이 틘 거라고.
사실을 사실이라 주장해 봤자 더 심한 폭력을 당할 거고 형사가 한 말을 들어보면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해서 용모는 진술서에 지장을 찍고 즉결재판에 넘겨지게 되었다. 마침 즉결재판이 있던 날 화자는 역전 거리에서 용모를 만났던 거고 그의 부탁으로 오후 1시에 진행되는 용모의 즉결재판에 동행하게 된다.
매주 한 번씩 1시간 동안 열리는 작은 읍의 순회재판소에서 드디어 용모 차례가 되었다. 재판에서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진술하며 억울함을 풀어야 할까,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써야 할까 내내 고민하던 용모는 진실을 말했다가 괜히 덧날까 봐 겁나서 뒤집어쓰자는 생각으로 판사 앞에 불려 나갔다.
야생 조류와 야생 동물 등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이며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보호하자는 동물을 해쳐서야 되겠느냐는 판사의 나무람을 말없이 듣고 있던 용모는 평소의 주눅 들고 겁먹은 음성이 아닌 태도로 입을 떼었다.
“물런 그렇지유. 그러나 말입니다, 꿩은 말입니다, 과연 현재 보호헐 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두 문제란 말입니다. 보호헐 건 보호허야 마땅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그렇지 않단 말입니다. 실지 농작물을 망치는 해조는 으레 참새만 긴 줄 아시는데 말입니다, 꿩의 피해는 말입니다, 사실 농군에게는 말입니다, 헐씬 심각하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그냥 참고로 아시라구 말씀드리는 말입니다." (p345~ 346)
젊은 판사는 용모를 쏘아보며 자연을 보호하고 야생 동물을 보호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용모는 아무것도 꿀릴 게 없다는 투로 지은 죄 없이 고개 숙이고 살아온 사람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은 몸짓으로 말했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겄는디유, 제가 뭐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예, 제가 잘못한 것은 제가 벌을 받아야 옳습니다. 예, 받겠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저도 법의 보호를 받고 싶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괜찮을는지 모르겄습니다마는……”
“괜찮으니까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거 아니오?”
“예, 그러믄유. 여기는 바깥허구 달러서 여러 가지 것을 보호허는 법정이라 이런 말씀도 드릴 수 있는디 말입니다, 저두 야생 동물 - 아니 그게 아니라 야생 인간인디 말입니다…… 야생 인격이 물격보다두 거시기허면 말입니다…… 그럴 수는 웂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p346)
판사는 신용모에게 벌금 2만 원을 선고했다. 피의자가 개전의 정이 전혀 안 보이고 술 취해서 횡설수설했다는 이유와 이런 사람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서 본보기를 삼아야 한다는 이유가 보태졌다.
판사의 판결을 끝으로 이야기는 끝나는데 나는 이 판결을 마주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신용모는 농부의 입장에서 꿩이 농작물에 주는 피해와 그로 인해 농사지으며 먹고살기 힘들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한다. 야생 동물 보호법으로 인해 보호받는 꿩들이 농작물을 다 망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 농부는 죽게 생겼다고, 판사와 법이 간과한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준다.
그러나 법령을 근거로 재판을 하는 젊은 판사에게 농부의 가혹한 삶의 현장은 전혀 와닿지 않는다. 그에게 법은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굳건히 지켜야 할 기준이었을 거다. 그리고 농부가 왜 꿩을 잡았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인간에게 도움이 되려고 만들어진 법이 힘없고 가진 것 없고 무지한 사람에게는 방패가 아니라 창이 되어 고통과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70년대에 벌금 2만 원은 9급 공무원 1호봉이 4만 원 하던 시대니까 먹고살기 팍팍한 가난한 농부에게는 아주 큰돈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용모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용모가 꿩을 들고 있는 현상을 사실로 믿은 경찰은 일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볼 생각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발뺌한다고 죄질이 나쁘다고 가혹한 폭력을 여러 번 용모에게 휘둘렀다.
평소 성격이 어수룩하고 물렁하고 무디고 변변치 못한 용모는 자신의 억울함을 정식 재판을 걸어 진실을 밝힐 만한 주제도 못 되는 사람이기에 그냥 뒤집어쓰자 생각했다. 그런데 재판 과정 중 판사의 말을 들으면서 용모의 머릿속에는 내내 당하면서 살아야 했던 수만 가지 일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야생 동물도 보호해 준다는 법정에서 나는 사람인데 나도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 세상은 자신을 한 번도 보호해 주거나 지켜주지 않았지만 법정은 여러 가지를 보호해 주는 데니까 적어도 동물보다는 사람이 먼저니까 나도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들.
그저 그런 이야기에 관한 해설이란 뜻의 '여요주서'에는 제목이 나타내는 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지만 나에게 ‘여요주서’의 이야기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신용모의 이야기는 가진 거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공권력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았는가에 대한 역사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