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후야 - 월곡에서 일어난 사건

이문구 <관촌수필> 여덟 번째 이야기

by 밝은 숲

'월곡후야'는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나온 여덟 편의 소설 중 마지막 이야기다. 월곡면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인 '월곡후야'는 1977년 1월 <월간 중앙>에 발표되었다.


소설 속 화자와 동향인 관촌마을 출신 김희찬은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상경했지만 서울로 올라온 지 반년 만에 꿈과는 많이 어긋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화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세계명작개칠사이다.


이 일은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세계명작을 이를테면 <데미안>, <어린 왕자>, <25시>, <러브 스토리>와 같은 책들을 조금씩 문장을 바꿔서 변조하는 일인데 앞머리 몇 자 혹은 뒷머리 몇 글자를 바꿔 번역자가 다른 것처럼 위조하는 작업이다.


그의 직장은 종로 5가 뒷골목의 변변찮은 한옥, 통일여인숙의 침침한 방구석이다. 등록번호와 전화번호도 없이 새로운 책을 찍어낼 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유령출판사는 김희찬이 붉은 글씨로 바꾼 책들을 원고로 조판하고 10권이나 2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으로 찍어내어 지방 서점으로 팔아넘겼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붉은 볼펜으로 글자 몇 개 혹은 문장 구조를 바꾼 원고료 아닌 위조료는 1페이지에 8원이었는데 매일 아침 7시에 나가 자정 가까이 일을 해도 담뱃값과 교통비 빼면 남는 게 없는 월급이었다. 더구나 온종일 오금 한번 못 펴고 쭈그려 앉아 일한 탓에 김희찬은 관절염까지 앓게 된다.


서울에서 꿈을 이루는 일이 쉽지 않음을 깨달은 김희찬은 자기 분수를 살펴보고 자신의 두드러진 결점과 병폐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밤낮으로 책을 읽어댄 탓에 쓸데없이 유식해졌다는 점인데 자기 생활과 무관한 지식 과잉 상태에 대해 그는 부끄러워했고 그런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김희찬은 없어도 살 만한 것과 있어서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자신이 지니고 살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서울을 떠나 귀농을 한다. 고향인 관촌마을에서 20리 떨어진 월곡면 종채리로 이사해 농사를 짓고 있는 김희찬이 궁금해 화자는 기차를 타고 월곡으로 향한다. 남의 과수원을 얻어 사과와 배 농사를 짓는 김희찬은 과수원 한 귀퉁이 살림집에서 동생 수찬과 자취를 하고 있다.


낙향한 지 몇 해 안 됐지만 희찬이 꾸려가는 과수원은 동네 마실터가 돼 있고 동생 수찬은 마을 청년 모임인 4H의 수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동네 청년들 움직임이 수상하다. 화자는 희찬에게서 마을에서 얼마 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열네 살 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순이가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개에게 정강이를 물렸다. 놀란 순이는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몰려와 순이를 치료해 주었다. 그런데 놀란 순이는 그 자리에서 낙태를 했고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더 놀라고 기가 막혔다.


순이가 낙태를 해서야 알게 된 어린이 성폭행 사건으로 동네는 발칵 뒤집혔고 소문은 먼 곳까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지서에서는 순경이 나와 순이에게 범인을 물었지만 아이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월곡의 총각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해자로 의심받고 맘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희찬의 과수원에 순이가 저울을 빌리러 왔고 심순경과 같이 있던 희찬이 아이를 달래니 그제야 순이는 범인이 누구인지 말했다. 범인은 순이 친구인 봉자의 아버지, 김선영이었다. 김선영은 농협 대리를 한 만큼 배운 것도 있고 중증 폐결핵으로 요양차 마을에 들어온 지 이태 정도 됐는데 아이가 셋에 나이도 지긋해 사람들의 의심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있던 인물이었다.


심순경은 순이를 돌려보내고 김선영을 찾아가 자백을 받아냈다. 그날 밤 구속되지 않은 김선영은 이장을 찾아가 구워삶았고 이장은 순이 어머니와 밤새워 흥정을 벌였다. 김선영은 순이 어머니에게 돈 3만 원과 두 마지기 밭문서를 위자료로 넘겨주기로 하고 미리 작성해 온 합의서에 순이 어머니 도장까지 받아 놓았다.


이튿날 아침, 이장의 입을 통해 김선영이 자수했다는 것과 쌍방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어린이 성폭행사건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끝나는 것을 월곡의 청년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기성세대들이 물질적인 합의를 한 것과 별도로 젊은이들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김선영의 범행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수찬의 과수원 집에 모여 분하고 치 떨려하면서 의논을 하다가 화자가 월곡에 왔던 그날 밤 마을회관에 모였다. 그들의 손엔 몽둥이가 하나씩 들려있고 김선영은 청년들 앞에 무릎이 꿇리어 있다.


청년들의 몽둥이찜질이 시작되려는 때 리더인 수찬이 그들을 막아서고 김선영을 구슬렸다. 내일 아침 당장 식구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면 봐 주겠다, 짐은 차차 정리해 가져가라는 말이었다. 청년들은 가해자 김선영이 마을을 떠나겠다는 다짐을 듣고서야 그를 풀어주었다.


이튿날 아침 김선영 가족의 행방을 알기도 전에 화자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해장을 하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화자는 희찬의 동생 수찬이 밥을 먹고 나가는 것을 본다. 나들이옷을 입고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수찬이 옆에는 역시 큼직한 여행가방을 든 여자가 함께 있다.


화자는 저수지 근처 주막집에서 희찬과 막걸리를 먹다가 들은 얘기가 얼핏 떠올랐다. 수찬이 사귀는 주막집 과부의 열아홉 살 된 딸이 임신을 했는데 아마도 수찬이 아이인 거 같다는 이야기였다.


소설 ‘월곡후야’에는 읽으면서도 끔찍한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나온다. 가해자는 의외의 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사람이 더구나 딸과 놀려고 자기 집에 찾아온 딸의 친구를 아내와 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자기 집에서 성폭행했다. 그리고 옷을 입혀 주면서 아이에게 돈 100원을 쥐여주었다. 거기에 더해 이장을 꼬드겨 돈으로 자신의 죄를 무마했다.


순이 어머니의 넋두리는 먹고사는 게 뭔지, 돈이 뭔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공중 동네분들만 괴롭혀쌌구 헐 게 아니라, 짚이 생각해봉깨 그게 낫겄데유. 껍데기만 남어서 그냥 내버려둬두 니열 모리면 제절루 뒈지게 생긴 늠, 밉기루야 찢어발겨두 션찮지만 형무소에 늫은들 뭘 허겄슈. 지집애 앞질 생각해서 어채피 이 동네는 뜨야겄구 헌디, 뜨자니 당정 끄니 끓일 것두 웂는 형편이지. 새깨 하나 내버리는 심치구 허자는 대루 해버리구 말었슈. 임자 나스걸랑 그늠헌티 받은 밭뛔기나 팔어줘유.“ (p368~369)


순이 어머니는 분노나 화, 앙갚음이나 정당한 판결보다는 순이를 위해서 소문이 파다한 동네를 떠나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 없이 가난한 살림에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일이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딸을 짓밟은 짐승의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그 돈을 받기로 한 순이 어머니의 정은 오죽했을까, 싶다.


김선영을 도덕적으로 응징하고자 했던 수찬도 자신의 도덕적 결함으로 스스로 마을을 떠나고 피해자인 순이네도 떠나고 가해자인 김선영은 마을을 떠났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순이가 평생 안고 살아갈 상처가 보이고, 그 끔찍한 돈을 받아 입에 풀칠이라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순이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이 보인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끔찍하 이를 데 없다.


순이의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이며 순이 어머니의 문드러진 마음은 또 어찌할 것인지... 이야기를 덮는 마음이 암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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