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베짱이의 환생
몸이 아직은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정신은 차릴 수 있었고, 말도 할 수 있었지만 그냥 계속 누워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척 연기를 했다. 개돌이가 물어봐도 못 알아듣는 척,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척했다. 천재 메뚜기 베짱이인 나는 이렇게 연기도 참 잘한다. ㅋㅋㅋㅋ
몸 상태가 안 좋기는 했지만, 우선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 알아야 했다. 이렇게 개돌이를 보고 있고, 개돌이가 음식을 떠 먹여 주는 것을 보면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가 살아있다니!!! 엄마가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해서, 한철이 끝나면 하늘나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무리 하늘나라가 행복하고 좋아 보여도, 살아남아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몇백 배는 좋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살아있는 것들은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큰 복이고, 대박이며,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만약 큰 병에 걸려 살 수 있는 날이 일주일 밖에 없다고 생각해 봐라. 일주일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이 짧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뭔가를 더 가지기 위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야 할까? 그것보다는 이 삶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 너무 힘들어도 살아있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힘든 것도 즐겨라.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너무 오래 누워있었다. 아무리 천재 메뚜기인 베짱이인 내가 연기력이 뛰어나도, 계속 개돌이를 속이기는 어려웠다. 오래 누워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온다.
베 짱 이 : 아~~~ 으~~~~ 여긴 어디~야? (이제 정신이 드는 척!)
개 돌 이 : 여긴 우리 집이야. 이제 정신이 드니?
베 짱 이 : 내가 아직 안 죽었네. 개돌이 네가 날 구해준 거야?
개 돌 이 : 지난여름에 베짱이 네가 우리를 도와주기도 했고, 하도 불쌍해 보여서 구해준 거야.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우리 집 앞에 쓰러져 있더라고. 우리 여왕님의 허락을 받고 형제들과 같이 여기 우리 집으로 옮겨 왔지.
베 짱 이 : 정말 고맙다. 내 생명의 은인!!! 이젠 내가 뭘 해야 하지?
몸이 어느 정도 움직여지자, 여왕님께 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왕님 앞에서는 잘 생각하고 말하라고 한다. 센스 있게 여왕님 기분 잘 맞춰드려야 한다고 한다. 여왕님이 기분 나빠할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잘 못되면 여왕님의 특식인 '메뚜기 튀김'이 될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
생명이 위험해? 난 어차피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엄마까지 보고 온 베짱이란 말이지. 내 이름도 베짱이야. 배짱이 두둑한데 뭐가 무섭겠냐? 복잡한 개미굴을 이리저리 지나 개미여왕이 있는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문 앞에는 헌병개미들이 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난 개미여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개미여왕 모습이 너무 무섭게 생겼네. 몸집은 메뚜기인 나보다 크다. 개미여왕 옆에는 시중을 드는 조그마한 개미들 몇 마리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개미여왕 : 네가 여름 내내 일도 안 하고 처먹고 놀기만 했던 개념 없는 메뚜기인 베짱이냐?
베 짱 이 : 네. 제가 메뚜기 중에서 가장 천재 메뚜기인 베짱이입니다.
개미여왕 : 천재 메뚜기라는 녀석이 추운 겨울에 굶주리고 얼어 죽을 뻔했단 말이냐? 개돌이가 불쌍한 너를 꼭 살려야 한다고 내게 와서 간곡하게 말하던데, 내가 너를 왜 살려야 했을까?
베 짱 이 : 저는 굳이 살려달라고 안 했는데요.
개돌이가 옆에서 '으이구' 하며 눈짓을 보낸다.
개미여왕 : 그래? 그러면 굳이 살려줄 필요가 없겠구나. 여봐라~ 저 녀석을 우리 아기들 먹이로 주는 게 좋겠구나. 바로 잡아 기름에 튀기면 신선하고 맛도 좋을 것 같다. 메뚜기 튀김을 바삭하게 만들어 오너라. 메뚜기 튀김은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임산부나,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이만한 보양식이 없을 것 같구나.
베 짱 이 : 헛! (큰일 났다! 개돌이가 말을 가려서 하라고 했는데~)
헌병 개미들이 나를 붙잡는다.
베 짱 이 : 여왕님 잠시만요. 저를 살려주시면 개미 조직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여왕님!!!
개미여왕 : 그래? 그럼 네가 우리 조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냐?
베 짱 이 : 저는 개미들보다 힘이 세서 무거운 것도 잘 옮기고, 싸움도 잘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편리한 도구들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개미여왕 : 내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베 짱 이 : 제가 지난해에 개미들한테 일할 때 편하게 쓰라고 몇 가지 공구랑 연장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개돌이가 옆에서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인다.
개 돌 이 : 여왕님! 맞습니다. 이 녀석이 몇 가지 공구를 만들어 주어서, 일도 편해지고 수확량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 녀석을 죽여 신선하게 먹어도 좋겠지만, 이 녀석의 힘과 머리를 이용하면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마마~
여왕개미 : 그래 알겠다.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개돌이 말을 한번 믿어 보겠다. 하지만, 내가 딱 봐서 그게 아니라면 메뚜기튀김으로 만들어 먹어버리겠다. 나가 보거라~
나는 추운 겨울 동안은 쉬고, 먹고, 자고, 가끔 어린 개미 새끼들이랑 아니 아기 개미들이랑 놀아주기도 하면서 개미굴에서 지냈다. 추운 겨울에는 집에서 휴식하고 소일거리 하는 게 장땡이다. 나 말고 개미들 말이다. 1년 내내 쉼 없이 일하다가 번아웃 되는 인간들도 많고 과로사하는 인간들도 있다.
이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동물인 호모사피엔스, 즉 인간들은 왜 이렇게 개미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거지? 특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쉬지 않고 일한다. 슈퍼맨들인 게 분명하다. 개미들은 해 떠 있을 때는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들어와 쉰다. 하지만 인간들은 아침에 일어나 해가 지고 나서도 일한다. 해가 진 후에 일하는 것을 야근이라고 하는데 야근을 하는 것도 일상이다. 어쩔 때는 밤을 꼬박 새워서 일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일만 하는 걸까? 일이 그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그건 아닐 텐데......
그나마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 있는 인간들은 좀 나은 편이다. 근로기준법이라고 해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노동법 중 하나인데, 거기에는 주당 몇 시간 이상은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일할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들은 아주 심각하다. 아침 일찍 나와서 밤늦도록 일한다. 주말도 없이 업장에 나와서 일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시간,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없다. 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일이 좋은 것인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 때문인가? 대한민국 도시의 빌딩 1층의 대부분은 자영업자의 공간이다. 그만큼 많다.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혹사하며 살아가는 자영업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번아웃되어 병원에 실려오는 인간들, 과로사하는 인간들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가? 돈? 자녀? 욕심? 출세? 인간들은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죽으면 의미 없는 것들인데, 좀 한심해 보인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들!!! 아휴~ 천재 베짱이가 보기엔 참 한심하다. 메뚜기들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 하는 짓은 왜 그 모양인 거야? 인간들아! 다음 생애에는 메뚜기로 태어나 보길 권한다.
나는 개미 조직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놀기만 좋아하는 욜로 메뚜기가 부지런한 개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좀 아이러니하지만 메뚜기 천재 베짱이는 잘 적응했다. 함께 지내면서 개돌이는 물론이고, 친해진 개미친구들도 여럿 있게 되었다.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