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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바스 이실장 Mar 21. 2024

베짱이는 살아있다!(6)

6화 - 베짱이가 노가다를?

나는 개미 조직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욜로 메뚜기가 부지런한 개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좀 아이러니하지만 메뚜기 천재 베짱이는 잘 적응했다. 함께 지내면서 개돌이는 물론이고, 친해진 개미친구들도 여럿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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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추운 겨울에는 개미들도 집을 나가 밖에서 일하지는 않았다. 겨울 내내 땅 속 개미굴과 집을 보수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했고, 그동안 모아놓은 음식들을 먹으며 여왕개미로부터 태어난 어린 개미들을 돌보았다. 나 베짱이도 개미와 함께 지내며 개돌이가 하는 작업들을 도왔다. 

새끼 개미들을 돌보면서 지난해에 겪었던 놀고 먹었던 내 이야기와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종(種)이 다른 나를 존경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더 신이 나서 개미 아이들에게 음악도 들려주고 신나게 놀아주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순수하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언제부터 영악해지는 것일까? 하긴 순수하고 착하기만 하다면 조직사회에서는 뒤처질 수밖에 없고 적응하지 못한다. 

영악해지고 자기 자신을 챙기는 것은 조직과 집단에 적응하며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 힘들고 이용당하는 일이 많다. 착한 인간들은 자신이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조직과 집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 조직을 떠나 다른 집단에 들어가도 변하지 않는다. 조직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그 이익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일수지. 다른 사람이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기 너무 어렵다. 하지만 순수함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순수함, 착함을 버리고 다른 인간들처럼 약아지거나 이익을 취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 순수한 사람들은 "나는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야"라는 강박관념을 절대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나'는 절대적으로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언젠가는 자신의 "착함"을 반드시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생각일까? 


어떤 사람이든 몇 가지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착하고 항상 배려하는 사람이야~"

"나는 강한 사람이야!"

"나는 뭘 해도 잘하는 사람이야"

"나는 외모도 예쁘고, 멋있어. 그렇게 보여야 해"

"나는 너희들 보다 우월해. 찌질이들아"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그렇게 보여야 해"

"나는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야"

"나는 불의를 보면 반드시 내가 해결해야 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부족해"

"나는 약해서 아무 일이나 할 수 없어"

"나는 부지런해서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은 없어!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해"

"나는 깔끔한 사람이라 주변이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없어"

"나는 지적이고 현명한 사람이어서, 항상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해"

"나는 경제적인 사람이라 뭐든 싸게 사야 속이 시원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위 강박관념을 몇 가지는 가지고 있을 거야. 나 베짱이가 생각하기엔 별로 의미 없는 짓이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위 강박관념 한두 가지에 몰빵 하지 말고, 모두 조금씩 모두 다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그러면 나중에 인생을 마감할 때쯤 후회가 줄어들지 않을까?


개미들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계절이 왔으니 나 베짱이도 눈치 없이 개미굴에서 소일거라나 하며 놀 수만은 없었다. 봄이 오자 개미들은 일하러 세상 밖으로 나섰다. 정찰개미가 식량이 있는 곳을 발견하면 일개미들이 그곳에 가서 식량이 될만한 것들을 개미 혼자 들 수 있을 만큼 쪼개고 나누어 들고 개미집으로 식량을 날랐다. 힘센 나 베짱이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식량을 개미집으로 옮기는 작업이 단순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것을 "노가다"라고 한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어 팔, 다리, 허리 몸이 안쑤시는 곳이 없었지만 천재 메뚜기인 베짱이는 적응도 잘해나갔다.

아침에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온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쉰다. 인간들의 노가다와 비교할 만하다. 요즘 인간들은 노가다 즉 막일을 하는 것을 기피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일을 해야 하는 젊은 세대들은 노가다를 기피한다. 힘 안 들이고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원한다. 젊은 세대 본인들도 노가다를 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간혹 노가다를 하려고 마음먹은 생각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엄마들이 극렬히 반대한다.


"먼지 많이 먹고, 힘들고 그렇게 위험한 일을 왜 하려고 하는 거야!"

"내가 널 아끼고 어떻게 키웠는데, 노가다 같은 일 같지도 않은 천한 잡것이나 하는 일을 한단 말이냐?"

"널 키우면서 학원비부터 해서 대학 등록금, 유학비까지 몇억이 들어갔는데 고작 한다는 게 노가다야?"


그래서 우리나라 노가다꾼 중에 젊은이는 없고 나이 든 할아버지들만 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가 노가다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건설현장 노가다는 요즘 하루 일당 18만 원은 주는 것 같다. 내가 5년 전에 노가다 했을 때는 13만 원이었는데 많이 올랐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꿀 알바이기도하다. 하루 대강 때우면 자기네 나라에서 버는 일당의 몇 배 이상일 테니까.


노가다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센스가 필요하지. 그게 없다면 노가다에 적응하기 힘들다. 거친 건설현장에서 벽돌 나르고(등짐 져 나를 일은 거의 없다. 화물엘베와 핸드카를 이용해 나른다)  망치질하는 노가다꾼을 인색막장으로 보는 인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노가다는 전문 기술자의 시작점이다. 노가다를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운다. 거친 환경에 적응하고, 힘쓰는 방법을 배우고(강한 힘과 속도가 필요한 일도 있고, 섬세하고 꼼꼼하게 하는 일을 구분하고), 간단한 수공구 기술을 익히는 것이지. 노가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하다. 노가다를 하면서 공구 및 재료 이름, 사용 방법, 기술 팁, 그리고 센스까지 익히게 된다. 노가다 분야도 아주 다양하다. 여러 가지 노가다를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기술 분야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수를 만나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독립하여 기술자로 인정받는다. 노가다꾼보다는 훨씬 많은 수입과 보람, 자신감을 얻게 된다. 우선 기술자라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하려면 노가다를 3개월 정도 해 보면 알게 된다.



천재 메뚜기인 나 베짱이가 노가다를 하다니. 개미들과 같이 매일 노가다를 하다 보니 나도 개미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베짱이가 개미가 되다니!!! 매일 무거운 식량들을 나르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지난해 매일매일, 매월 매월 놀면서 지냈던 세월과 비교가 된다. 힘만 든다는 건 아니다. 일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상쾌하다는 것! 나도 조직 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자존감! 그리고 무엇보다 밥이 맛있다. 놀면서 먹는 밥보다 일하고 난 후 먹는 밥은 왜 이렇게 더 맛있는 걸까? 신기하다. 그리고 잠도 더 맛있다. 지난해에 매일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놀았을 때에는 잠이 그냥 그런 잠이었다. 가끔 잠이 안 오기도 했고. 그런데 일하고 잠을 자면 왜 이렇게 잠이 맛있는지 참~ 나는 개미와 함께 일하면서 왜 이렇게 개미들이 열심히 일하는지 느끼게 되었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많이 모아 건물주가 되어 나머지 인생을 평생 놀고먹고 싶어 한다. 나 베짱이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놀아봐라. 노는 게 재미가 있을까?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놀았을 때가 더 재미있고, 배고플 때 먹는 밥이 훨씬 맛있다는 것을!


그래서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하고, 조금은 긴장을 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마냥 놀기만 하면 재미있을까? 그것은 몇 달 가지 못한다. 소일거리라도 해야 컨디션도 유지할 수 있고, 면역력도 유지되어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근육도 퇴화하지 않는다. 


그러면 정말 할 것 없는 인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먹고 살만 하니까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주변의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좀 도와줘라. 봉사 좀 하라고. 금전적으로가 아니라 육체적, 물리적으로 말이다. 자신이 얻게 된 것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말고. 아니 지금 모아 놓은 것도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텐데 더 더 더 더 쌓고 벌어 들이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기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자신이 얻게 된 경제적 여유와 부(富)가 오롯이 자신의 노력으로 인한 것일까? 주변이 도와준 것은 아닐까? 그런 자들은 대부분 자기 노력이 120%라고 생각하며, 빈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을 게으르고 생각 없는 놈이라고 무시한다.


과연 혼자만의 노력으로 그런 부(富)와 명성을 얻게 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모님의 경제적 지원 뿐만아니라(학교를 편안하게 다닐수 있는 것도 포함), 자신의 신체적 건강함, 집중하고 노력할 수 있는 습관과 생각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다. "효도"라는 것이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인 것은 맞다. 그것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의 토대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부모님이기 때문에,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효(孝)의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여유를 가진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은 주변에서 도와준 것이다. 장사를 했다면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사업을 했다면 자금을 투자해 준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기술을 배웠다면 기술을 가르쳐 준 스승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주변에서 때와 장소에 맞게 도와준 것이다. 선조들이 닦아 놓은 평탄대로를 걸으며. 

자신이 한 것은 무엇일까? 약간의 노력과 영감? 자신은 밤잠도 안 자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과 선조들의 덕이다. 자신은 세월이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맞긴 것뿐! 자신은 운이 좋아 크고 깊고 깨끗한 물길로 흘러들어 간 것이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흘러 들어간 곳이 탁한 흙탕물이 흐르는 조그마한 냇가가 아닐까? 인생을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들어갈 것인지 결정하는 모든 것은 운이다. 그래서 잘난 척 할 이유도, 못난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 지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나 베짱이처럼 평생 놀고먹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때그때 놀고먹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냔 말이다. 아니다. 운이 나빴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부모를 만나고,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려웠을 뿐이다. 딱 그것뿐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게 되면 자신의 마음도 좋아지고 몸도 건강해진다. 그게 바로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궁극의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한철 사는 메뚜기인 나 베짱이도 이런 깨달음을 얻었는데, 10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 인간들도 이런 깨달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도 솔직히 잘난 척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뭘까. 모든 것은 운이다.



개미와 같이 살아가는 몇 달 동안 나는 개미 조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개미들은 여왕개미에게 충성하며 조직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한다. 한 마리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조직의 규율에 맞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개미가 꿀벌과 함께 조직에 충성하고 일만 하는 곤충의 대명사가 된 까닭을 알게 되었다. 항상 즐기고 놀아야 하는 베짱이 근성이 어디 가질 않는 것일까? 몇달을 같이 있어보니 베짱이인 나는 이 개미 집단이 너무 답답하게 보였다.  왜 여왕개미엑 충성하고 일만 해야 할까? 나를 위한 시간도 없이 말이다. 개미의 인생은 누구를 위한 인생인가? 여왕개미인가? 아니면 개미 조직인가?



6화 끝! 다음화에 계속~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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