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베짱이! 과로로 또 쓰러지다.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아무리 천재 메뚜기 베짱이 이긴 하지만, 지금은 개미 조직을 떠나 혼자 살아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다. 험난한(?) 세상을 잘 모르기도 하고 조직을 떠나면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나는 아직 모른다. 개미 조직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 이런 것이 바로 겸손이다.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 없이 까불다가는 한방에 가는 수가 있다. 아직은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혼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조직에 적응한 후, 일반 개미들보다 내가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조직에 증명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나 베짱이는 개미들과 열심히 일 하면서, 개미 조직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개미여왕에게 건의하고 설득했다. 개미들의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개미조직을 보안경비부, 주택청소부, 돌봄교육부, 식량채집부, 감독관찰부, 의료보건부, 도구개발부, 엔터테인문화부 등으로 나누어 방대한 개미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힘 있고, 멋진 조직을 가진 개미 여황제가 될 것이라고 개미여왕을 설득했다. 천재 메뚜기의 이해하기 쉬운 명품 브리핑으로 개미여왕은 내 의견을 적극 받아들였다. 개미여왕도 큰 조직을 관리하면서 지능이 발달한 것 같다. 일반 일개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제 천재 메뚜기 나 베짱이를 통한 개미여왕의 실현 가능한 꿈이 생긴 것이다.
개미여왕의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로 나는 개미 조직을 빠르게 정비할 수 있었고 개미여왕의 나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졌다. 하지만 수많은 개미들을 내가 모두 관리하고 통제할 수는 없었다. 개미 지휘부를 우선 만들고, 나와 친하고 그나마 지능이 있는 개미들로 구성했다. 무엇보다 나를 살려준 개돌이를 수장으로 임명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개미들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설득하고, 교육하고, 훈련하고, 감독하고, 평가하기를 반복했다. 몇 주가 지나자 드디어 조직들이 제 할 일을 찾아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역시 천재 메뚜기 베짱이가 맞다.
그리고 개미들이 작업할 때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천재메뚜기인 나는 개미 툴(tool)을 만들어주었다. 작업할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절삭가위, 이동 수레, 수동 컨베이어벨트 등 많은 작업도구를 개발했다. 개발한 도구들의 불편한 부분을 연구하며 계속 업그레이드했다.
나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개미여왕으로부터 더 좋은 먹이와 식량을 많이 분배받았고, 개미여왕은 더욱 분발하여 열심히 일 하라며 널찍하고 큰 방을 내게 주었다. 내 개인 창고에 썩지 않는 식량이 쌓여갔다. 누구든 조직과 상부에서 인정받으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는 법! 나도 모르게 더욱더 열심히 내 체력과 정신을 개미 조직에 몰빵 하게 되었다.
개미여왕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들은 점점 커져만 갔고 나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개미조직을 돌보고 도구를 개발했다. 문제가 생기면 밤에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체력고갈!!! 늘어나는 업무량과 개미여왕의 기대치! 이러다가 과로사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갔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어갔다. 추운 겨울이 왔고, 과중한 업무로 나는 또 정신을 잃었다. 지난해에는 겨울에 춥고 배고파서 정신을 잃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무리한 탓이었다.
나 베짱이는 꿈을 꾸었다. 이게 꿈인지, 그게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중국 후한 말 나는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말하고, 동남풍을 불게 하며 적벽대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그곳에서 남만을 정벌했고 맹획을 일곱 번이나 사로잡고 놓아준 칠종칠금의 고사를 남겼다. 촉나라의 내정에 기초를 다지고 민생 경제를 살폈다. 촉나라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위나라를 치기 위해 북벌을 단행했고, 목우유마라는 이동수단을 제작했다. 그러다가 5차 북벌을 재개하면서 누적된 피로와 지병으로 인해 오장원의 별이 되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 그게 꿈인가? 제갈공명이 베짱이로 다시 태어나다니. 피로 누적으로 과로사한 안타까운 제갈공명을 위해 조물주께서 놀고먹는 욜로족 베짱이로 태어나 한철 누리다 가게 한 것인데, 이렇게 천재 메뚜기인 베짱이로 환생하여 개미조직에 들어와 제갈공명 같은 업적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내 전생이 제갈공명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베짱이로 태어나서도 개미조직에서 과로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게 하다니. 베짱이 인생사 파란만장하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개돌이와 예쁜 나비가 나를 간호하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헉스! 여자다! 그리고 예쁘다!
나는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척하며 고민에 빠졌다. 예뻐도 너무 예쁘다. 어쩌지? 지난해에 만났던 나비 여친(2화에서 나옴) 보다 훨씬 예쁘다.
여자 나비 : 어? 깨어난 것 같은데...... 아닌가?
베 짱 이 : ......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베 짱 이 : (몸을 뒤척이며) 너는 누구니?
여자 나비 : 나? 나는 나비야~ 이름은 나불나불이지......
베 짱 이 : 나불나불? 이름이 신선하고 예쁘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뭐 하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용은 이랬다. 나불나불이도 지난해 나처럼 띵까띵까 풀밭에서 꿀만 빨며 놀다가 추운 겨울이 오자 춥고 배고파서 이러다 죽나 보다 하고 쓰러졌는데, 정신이 들어보니 개미굴이었다는 것이다. 스토리가 나랑 똑같다. 개돌이라는 개미 녀석이 나불나불이를 구해주었고, 지금은 상태가 좋아져 나불나불이에게 나 베짱이를 돌봐주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개돌이가 계획한 것이 분명하다. 음흉한데 참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내가 개돌이를 가르친 보람이 있다.
개돌이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피곤에 찌든 자에게는 연애가 피로회복제라는 것을.
몸과 마음이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고 지쳐 활력을 잃고, 무력감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에는 연애가 답이다. 연애는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목적을 설정하게 한다. 삶의 활력을 주는 것이지. 박카스의 몇 만 배라고 생각하면 설명이 될까? (안될듯하다. 미안하다ㅠㅠ)
연애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정신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는 것은 없다. 신경정신과의 만병통치약인 연애! (다만, 기혼자에게는 쥐약!) 가끔 연애하다가 상대에게 까이는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하지만, 그 부작용에도 새로운 연애가 약이 된다. 젊은이들이여 절대 연애를 포기하지 마라!
개돌이와 함께 개미조직을 개편하고 정비했다. 그러면서 개돌이에게 내가 가진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개돌이도 나를 닮은 천재 개미였던 것이다. 개돌이는 따듯한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두뇌회전이 빨라 이해력이 좋고,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주변의 형편에 맞게 조직을 잘 이용하며, 많은 개미들이 개돌이를 따른다. 웅변 실력도 좋아 살짝 카리스마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개돌이에게 인생에서 도움이 될 만한 철학과 세상의 이치를 틈나는 대로 설명해 주었다. 개돌이는 보답으로 나에게 연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대단한 개돌이! 쓰담쓰담 칭찬할 수밖에 없는 녀석!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