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웃픈 시작도 있나요
이 글은 순전히 내 기억을 되짚어보며,
잊고 싶지 않아서 남긴다.
정보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양해를 바란다.
지금은 이틀이 지난 후로,
좀 덜 격양되고, 덜 감정적일 테니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차분히 써보려고 한다.
첫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연휴는 끝나지 않았고, 유심은 숨조차 쉬지 않는다.
'sk텔레콤'도 폭파시키고 싶고, '아이즈모바일'도 터트리고 싶다.
아주 솔직한 마음이다.
유심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살 길은 있다.
입국하면 현지 E심으로 충분히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니,
까막눈은 아닐 것이라 자부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일정은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였지만,
그를 위해선 정말 많은 걸 미리 해놔야 했다.
그랩 어플 인증, 에어비앤비 주인과 사전 연락,
휴대폰 인증이 필요한 모든 작업들을 대체할 수단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나는 태국으로 출발했다.
20살 때야 공항만 가도 설레지,
10년이 넘게 지나고 보니 비행기가 얼마나 닭장처럼 느껴지는지..
눈 감았다 뜨면 순간이동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럼에도 덜어내는 중인 나는
'그럴 수 있지'를 장착하고,
'편하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이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예전엔 좀 더 좋은 자리, 좀 더 빠른 하차,
좀 더 알차게 즐겨야 한다는 압박이 당연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12일이나 머무르는 처지에
굳이 하루 종일 나를 채찍질하며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며,
'나보다 바쁜 사람 많겠지'
라며 먼저 가시라고 배웅해드리고 싶었다.
"저는 조금 늦게 도착해도 됩니다"라며.
그런데 또 면세점에는 무슨 그런 미련이 남았는지,
큰 종이가방 세 개에 내 기내 수화물까지 해서,
보딩 자체가 막힐 뻔했다.
욕심 없다는 거 다 거짓말이다. 물욕이 물욕이..
결국 마지막 탑승자, 또 나.
어렵게 어렵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역시 비행기에서의 시간은
흘렀나 싶어도 더 가야 하더라.
예능을 3개를 섭렵하고, 버즈가 생명을 다하고,
귀마개는 왜 짐칸에 넣었는지 자책하면서
1시간 반을 버티고 서야
후끈한 방콕에 도착!
지금부터 시작이다.
입국신고서는 미리 작성했지만
직원은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패스.
수화물을 기다리며, lte 선 찾아 삼매경.
왜 안되는지.. 미리 등록도 다했는데..
공항 와이파이로 '유심사'에 문의 폭주
그런데 내 실수였다.
늦은 밤에 답변 감사드려요 정말ㅠㅠ
국제 미아가 될까봐 불안했습니다..
그랩 호출. 첫 번째 시도.
짐가방 두 개에 술 두 병까지 들고
그랩을 불렀다. 그때까진 아주 순조로웠다.
집주인은 체크인 도우미가 로비에서 기다릴 거라고 했다.
오, 여유롭게 11시 전엔 도착하겠구나 싶어
기분 좋게 그랩을 기다렸다.
그런데 기사의 연락,
“차 배터리 방전. 한 시간 기다려줄 수 있어요?”
What????
그래서 취소하려 했더니 52바트 위약금.
11분 기다린 후에야 차주가 취소.
그리고 다시 그랩 호출. 또 11분 대기.
이쯤 되면 다음엔 택시를 흥정하거나
공항 안에서 미리 그랩을 불러놓는 게 낫다.
이렇게 경험으로 체득하며 노하우 쌓아가는 거지..^^
두 번째 그랩. 숙소로 출발.
이미 11시. 도착 예정 시간은 11시 반.
집주인은 늦는다고 말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11시 27분. 기사님 왈, “여기 당신 숙소예요.”
“코쿤카, 코쿤카” 인사하며 내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에어비앤비 주소 다시 확인해 보니… 거리가 다르다.
어디가 집이죠? 집주인에게 현 위치 보내도 묵묵부답.
여성 도우미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짐 세 개와 함께 걷는 자정의 방콕.
또 이 상황이라니. 후…
그냥 걸었다.
짐 세 개를 이끌고, 자정을 향해가는 밤.
가다가 본 20대 초중반쯤의 엄마와 아이가
BTS 육교 아래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
C’est dommage…
그냥 지나치는 내가 미웠다.
점점 뚝뚝 떨어지는 땀..
내가 미친 X이다... 하..
그때, 툭툭이 등장.
관광용인 줄 알았던 툭툭이를
짐 싣고 타게 될 줄이야.
흥정하는 나, 대단하다 정말.
200바트 부르던 기사에게
100바트 아니면 안 간다고 배짱.
마음씨 좋은 기사님, 결국 OK.
툭툭이에 짐을 싣고 타자
땀범벅 된 나를 보고 현실 타격.
그리고 진심으로 바랐다.
부디 여기가 진짜 숙소이기를…
내려서 값을 지불하려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건 1000바트,
잔돈은 없다는 그,
나의????? 한 표정.
툭툭이 기사님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잔돈을 바꿔 오라고, 자기는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뭘 믿고 나를 보내주는 걸까. 다정한 사람..
세븐일레븐으로 달려가,
갈증 난 목을 채워줄 창 비어 하나와, 그를 위한 슈웹스를 하나 사서
잔돈과 함께 돌아왔다.
그에게 건네어 주니 놀라는 눈빛.
감사했어요. 비록 그곳이 진짜 숙소는 아니었지만..^^
다시 로비로 달려가 주인이 보내준 사진과 비교해 보는데,
여기가 아닌뎁쇼?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봐도 내 말을 못 알아듣고.
그림 맞추기 하듯 맞춰 가는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경비 아저씨한테 가서 "여기 혹시 너희 로비야?"
근데 아니라고..
지도를 보여주며 여긴 어디냐고..
땀 뻘뻘 흘리는 다 큰 처자가 안타까웠는지
영어를 못해도 다들 도와주신다.
제가 이래서 태국 좋아해요.
솔직히 말해 짐 세 개가 아니라 내 몸뚱이만 있었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리였다.
근데
이놈의... 짐들.. 갖다 버리고 싶은 짐들....
내가 미쳤지... 하.. 왜 집을 떠나왔냐고....
수십 번을 되뇌었다.
그렇게 여기가 숙소인가, 저기가 숙소인가 하며
문을 여는데 호스트분이 똬!
집주인도 도착 3분 전에서야 답이 왔었더라.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고..
도착시간 12시 반
난 한 시간을 헤맸다.
그녀는 숙소를 안내해 주었고
키카드를 건네주었으며, 영어를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하겠다던 나는
죽일 놈의 정리 성향 덕분에
아까 사 온 창 비어를 마셔가며,
모든 짐을 정리하고,
마실 물이 없네.
세븐일레븐...
그렇게 아까 갔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가
마실 것을 잔뜩 사 온 후에야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가자마자 씻고는
감동란인 줄 알고 깠던
계란을 하나 까서 흡입하는데(분명히 Salted Eggs라고 적혀 있었다.)
소태.... 소태..... 솔티드 아니고 소태...
너무 짜서 아몬드 우유가 다 들어가더라.
아직도 2개를 다 먹지 못했다.
버려지겠지...
그렇게 양치하고,
내일은 무조건 쉰다고 각오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숙소 주소를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좀 만 더 세세하게 볼 걸 하는 후회를 해보았자 의미가 없으니,
다음번에는 그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며 다짐하고,
그리고 들어간 숙소는 생각보다 럭키비키였다.
통로 지역 치고는 1박에 49불이라는 저렴한 가격이었으며,
뷰는 기가 막혔고, 시간이 지나 안 사실이지만,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마사지 가게까지 걸어서 3분 거리.
(그래서 나 같은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추천합니다.
괜찮은 숙소예요!)
결론은 3시 30분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강제 시차적응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