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다 했다. 다섯 번째 밤

물이 새어 들어온 밤, 마음도 살짝 젖었습니다.

by 홍고롱



방콕의 6월은 본격적인 우기.
그래서 5월에 떠난 나는…
솔직히 말해, 운이 좋았다.

간간이 비는 내렸지만, 돌아다니기엔 딱 좋았달까.


하지만 내가 상상한 ‘비’는 분무기였는데,

이건… 소화전 수준이다.

그 얘기는 좀 뒤에 하기로 하고, 일단 땀부터 닦고 시작하자.





주말에만 열린다는 짜뚜짝 시장.

평소라면 인파 많은 곳은 무조건 피하는 내가

큰맘 먹고 움직였다.


한숨을 들이쉬고, 통로역에서 BTS를 탔다.

목이 너무 말라 역 안 카페에 들러 차이티를 시켰다. 가격은 50밧.
“오, 괜찮네” 하며 지갑에서 10밧을 당당하게 꺼내 건넸다.

바리스타는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난처해한다.


나는 ‘티켓티켓! 웨잇어미닛!’이라며 잔돈을 바꾸러 갔다가 다시 50밧을 내밀었다.

BTS에 올라서야 내가 돈 개념 없이 지불했다는 걸 알게 됐다.


아, 음료가 50밧이었지… 내가 낸 건 10밧이었고.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 돈으론 어림도 없다”는 거였구나.


외국 나오면 꼭 시장놀이하는 기분이다.
“이거 주세요” 하고 장난감 돈 내는 느낌.


이럴 땐 세상물정도 모르고, 계산도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모지래이.. 모지래이..





짜뚜짝은 넓었고, 정말 더웠다.
땀이 흐르는 걸 넘어 흘러내렸다. 손선풍기 없었으면 큰일 날 뻔.


너무 배가 고파서 냄새에 이끌려

돼지고기 미트볼을 하나 집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기 있나요?


당연히 바로 아메리카노까지 추가.

손에 든 게 너무 많아졌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생존이었다.


시장 입구를 들어서 왼쪽 방향을 따라가다 보니,
간간이 에어컨이 틀어진 가게도 있어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쪽 구역만 둘러보고 나왔다.


솔직히 다 보기엔 너무 컸다.

리넨 옷, 향수, 비누, 오일…

동남아 특유의 감성이 철철 넘쳤고,

리넨은 접으면 ‘딱’ 소리 날 만큼 빳빳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이번 여행, 엄마도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일리지 소멸돼서 혼자 조용히 다녀올게~” 했더니
그녀는 삐졌다.


하루 두 번 하던 전화도 뚝.

고양이 둘 돌봐주면서도 속상한 마음이 컸을 거다.


그래서 짜뚜짝에서는 엄마 줄 걸 먼저 챙겼다.

페인팅된 커플 셔츠,

계속 눈에 밟히던 상의까지.

결국 다 샀다.






손에 든 쇼핑백을 부여잡고 돌아와,

KFC 치킨과 맥주 한 캔으로 방콕의 열기를 식혔다.

씻고 쉬다 보니,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그런데 밖에서 들리는 소리… 비가 온다.
그것도 그냥 비가 아니라 미친 듯이 퍼붓는다.

고민했다. 이대로 포기할까, 아니면 비 감성 더해 한 번 나가볼까.

결국 콘도 셔틀을 타고 다시 통로역으로.


일본식 이자카야를 향해 걷는데, 어랏...?

여기가.. 호수였던가요?

분명히 도로였던 것 같은데요..?

근데 여러분은 왜 그냥 걸어가시죠?

양말만 벗으면 길이 되는 건가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믿기 힘들었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차들이 씽씽 다니던 길인데,

지금은 누가 봐도 물 반 도로반.


긴바지를 입고 나온 걸 후회했지만,
짧았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거다.


멍하니 서 있길 10분.
돌아갈까? 그냥 배달시켜 먹을 걸 그랬나?
온갖 후회가 머릿속을 꽉 채운 순간—

누가 휙, 하고 튀어나간다.

한 소녀.

멋찐 녀자..


차가 없는 틈을 노려
차도 위를 쪼르르 달려간다.


이거다.

지금이다.

이걸 놓치면 오늘의 계획은 물거품.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외쳤다.
“하느님, 저를 죽이지 마세요.”


그리고 나섰다.
JUMP! JUMP! JUMP!

한 발, 두 발, 세 발.

뛰는 내내 ‘망했다’는 생각과 ‘살았다’는 희망이 교차했다.


결국 무사 도착.

서로 얼굴 한 번 보고는 빵 터지고, 각자 자기 길로.


에너지가 방전된 나는 돈가스집 입장.
치즈 돈가스 비주얼에 이끌려 들어가 폭풍 흡입.

비는 계속 오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묵상 타임.


이번엔 또 레코드 바가 눈에 들어왔다.


MODERN DAY CULTURE RECORD BAR.
평점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 보인다.


1층에 대마초 가게가 있어 슬그머니 피해 올라간다.
마지막 층에 힙한 공간 하나 딱 나온다.


여긴 태국인가 브루클린인가.

음악은 흐르되 시끄럽지 않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칵테일은 괜찮았고, 직원들은 힙했고,
나는 혼자였지만 마음은 가득 찼다.
느좋이어따…


마지막으로 나온 식후주.
사케 위에 판단 시럽을 부드럽게 얹은, 크리미한 한 잔.


달큰한 여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오늘 하루를 천천히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무엇 하나 과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좋았다.


오늘 하루, 비가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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