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3일차, 미음을 가라앉히는 음악
회식이 끝나고 들었던 이런 저런 생각들을 주절주절 적었던게 며칠 전인데 벌써 퇴사 3일차라는 문구를 달고 글을 쓰고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지만 정말 낯설고 우습기도 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갑자기 퇴사하게 되었지만 의외로 나는 - 아직까지는 - 마음에 별 다른 동요 없이 잘 지내고 있다. 퇴사를 괜히 했다는 후회나 취업에 대한 불안도 거의 없다. 정말인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맘 썼던 시간이 아깝다 느껴질만큼, 지금 흘러가는 1분 1초가 소중한 시간임을 다시 깨닫고 있다.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데는 음악만한게 없다고 생각한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푹 빠져 들었던 오늘의 음악은 오랫만에 틀어본 정성하의 L'atelier다. 10년 넘는 정성하 팬으로서 늘 편곡 연주만 듣다가 이런 자작곡이 나오면 엄청 반갑게 맞이하게 된다. 마치 '이건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얘기로 하자~'로 시작하는 친구의 비밀얘기 같달까. 설렘으로 엷게 마음을 물들이는 도입부는 평소의 연주 스타일처럼 아주 섬세하다.
이 곡이 좋은 이유는 앨범 재킷과 어울려서, 라는 이유도 있지만 내가 정성하라는 아티스트를 꾸준히 좋아해온 이유를 십분 설명할 수 있어서다. 특별한 핑거스타일 테크닉이나 퍼커시브가 없어도 듣다보면 4분이 넘는 시간동안 완전히 곡에만 집중하게 된다. 왈츠 박자와 멜로디 전개, 깔끔한 연주가 아주 잘 어울린다. 가을방학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아주 맑고 따뜻한 감성이 돋보인다. 담백한 연주만으로 정성하의 색깔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앨범 제목과도 참 잘 어울린다. 볕이 잘 드는 한낮의 작업실 풍경을 악보로 옮겨놓은 것 같은 곡이다.
한낮에 책을 읽으며 무수히 들었던 음악이라 저녁 내내 귓가에 맴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완벽하지는 못했던 순간의 아쉬움을 달래고 또 퇴사 4일차를 어찌 보내야 할 지 모를 나를 위해서, 자기 전에 머리 속에 깨끗한 도화지를 펼쳐놓는 기분으로 딱 한 번만 더 듣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