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한 Mar 30. 2019

주말근무

부끄러움과 잔업은 나의 몫

어제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천천히 곱씹어보니 안한 일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미래의 내 자신을 위해서 오늘 출근을 해서 어느 정도는 해결해 놓아야 내일을 맘편히 놀고 월요일에 신나게 깨질 힘이 생길 것 같았다. 일곱시도 되기 전에 눈을 떠서 예약해 놓은 병원에 갔다오고, 점심을 대충 떼우고 사무실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환승하려고 내린 찰나, 사무실 보안카드를 안들고 와서 사무실 출입 자체가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짜증난다기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시켜서 하는 근무도 아니고 순전히 나의 업무 미숙으로 저지른 일을 수습하러 가는 건데, 보안카드 때문에 출입도 안될 상황이라니. 그 모든 걸 내가 자초했다는 게 너무 어이 없어서 웃겼다.


그래도 날씨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진짜 슬플 뻔 했다. 버스 타고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좀 있다가 돈 받기 위해서 벚꽃놀이 하러 간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내가 저질러 놓은 똥(?)들을 하나 둘 수습하고 있었더니 실장님이며 팀장님이 들어오셨다. 왜 주말에 이 좋은 날씨에 칙칙하게 사무실에서 이러고 있느냐고 묻는 그분들께 딱히 변명할 거리가 없어서 솔직히 말씀드렸다. 주중에 실수하고 잘못했던 일을 수습하고 있었다고.


주중에 안하고 왜 오늘 나와서 이러고 있어,

업무에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여기저기 물어보면서 천천히 적응해요, 그래야 오래 가지


실장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는 하나 틀린 게 없다. 주중에 좀 더 남아서 보고 꼼꼼하게 따져봤으면 오늘 푹 쉴 수 도 있었겠지만, 주중에는 내가 하고 있는게 업무가 아니라 삽질이란 걸 깨닫지 못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에 하고 있던 일을 까먹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자료 요청에 당황해서 식은땀이 난 적도 있다. 처음 업무를 배우게 되서 그런지 잘 배워보고 싶고 실수는 될 수 있으면 안하고 싶고, 하게 되더라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왜 이렇게 모든 일은 어렵기만 하고 나는 정답만 쏙쏙 피해가는지. 멍부인 나도 답답한데 날 보고 있는 사수들은 어지간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일단 걷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