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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Dec 29. 2019

방어는 큰 만큼 맛있어요

그리구 비싸요

한 시간 반의 기다림 끝에 영접한 방어의 때깔. 방어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맛있게 먹었다. 속이 약간 쓰렸는데 무시하고 소주도 마셨다. 주말에 직장 상사를 만나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이런 직장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일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야 뭐 내가 아껴쓰고 적게쓰고 쪼개쓰면 되니까!


2차로 맥주까지 먹고 와서 기분좋게 씻고 누워서 자기 전에 인스타를 좀 둘러보다가, 약간 씁쓸해졌다. 누구는 공기업에 취업을 했고 누구는 고기집을 3호점까지 내서 모님께 바다가 보이는 저 푸른 초원 위에 집을 지어드렸다. 다른 누구는 명문대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다시 명문대 로스쿨로 갔단다. 그리고 누구는 남자친구가 해준 선물을 두르고 꽤 좋아보이는 차에서 행복해보이는 사진을 찍어 올렸다.


약간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오전에 일어나서 다녀온 병원 2군데의 진료비와 약값, 월급이 아까워서 2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꾹 참고 카페 대신 지하철 역에 앉아서 약속시간까지 읽었던 중고책 몇 장, 리고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막내라서 얻어먹은 방어회와 소주. 오늘은 꼭 나를 위해 시간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평일 내내 일한 게 전혀 아깝지 않을만큼 재미나고 행복하게 보냈는데 겨우 다른 사람의 인스타 사진 몇 장으로 내 일주일치 행복이란 게 참 보잘것 없는 게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1월엔 토익을 해야지, 컴퓨터 자격증도 다시 따야지, 그리고 자소서도 열심히 써야지 나한테 필요한 것들 소중한 것들을 쉼없이 나열하고 있었는데 이미 저만치 앞질러간 친구들의 꽁무니는 보이지도 않는다. 무기력함과 각성을 동시에 느꼈다. 열심히 살고 또 열심히 살아서 저 커다란 대방어처럼 쓸모있어졌으면. 값비싸졌으면. 두둑해졌으면.

맛있다고 쩝쩝거린 대방어가 세상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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