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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Jul 29. 2020

20살부터 다시 1살로 시작할래요

그럼 서툴러도 괜찮으니까요

19살, 최악의 성적표를 수능에서 받아둔 겨울이었다. 두 달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한동안은 잠만 잤다. 수험표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머리를 하고 화장품과 옷을 사고 이것저것 대학 생활에 필요한 최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사는 또래들의 모습을 뉴스로 간간히 접했다. 방구석에서 기타를 끌어안고 악보를 보며 더듬더듬 연주하는 걸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엔 귀가하신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집근처를 쏘다니며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서야 고양이처럼 살며시 들어와서 새벽잠을 자는 것. 그게 내 10대의 마지막 겨울이었고 스무 살 첫 겨울이었다.

다시 오랜만에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는 날, 간만에 똑바로 거울을 보고 좀 놀라고 말았다. 두 달정도 잘 챙겨먹지 않고 밤마다 돌아다녔더니 체중은 10키로 가까이 빠져서 교복은 새로 맞췄을 때보다 훨씬 더 커 보였고, 정리되지 못한 반곱슬 머리칼은 제멋대로 뻗어있었다. 어차피 같이 할 친구 하나 없는 졸업식이니, 빨리 가서 졸업장만 몰래 받아서 나오고 싶었다.


졸업장만 빨리 받고 집에 가도 된다는 말은 다 뻥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에게 담임 선생님이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 잠깐 남아 있으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카카오톡 친구추가를 시작하면서 미래의 반창회, 동창회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있을 때, 나는 4시간 동안 교실 맨 뒷자리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주워듣거나 바짝 깎은 손톱을 한번씩 눌러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너는 재수를 해도 명문대는 못 갈 거니까 대학에 뜻을 두지 말고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이 내가 졸업식 때 학교에서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었다. 하필이면 엄마가 옆에 서 있을 때 진심어린 악담(?)을 했던 담임 선생이 다른 친구에겐 너는 재수하면 반드시 명문대에 갈 수 있을거니까 힘을 내라고 말했던 거나 수능성적표보다 더 부끄러웠던 건, 교실에 얘기 나눌 친구 하나 없이 학창시절을 보낸 것을 엄마가 그 때 처음 알았다는 것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디안 레스토랑에서 울음이 터질까봐 엄마 얼굴를 보지도 못한 채 음식을 입에 꾸역꾸역 밀어넣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려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친구도, 합격한 대학도 없는 나는 지난 두 달동안 살았던 것과 똑같이 또 같은 한 달을 꾸역꾸역 살아냈다.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 전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드는 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 유리 밑에 끼워진 어릴 적 사진 속의 나는 옆에 누가 있던 간에 잇몸이 다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고 대차게 까불었는데.

4번째 계약직을 하다보니, 나는 모든 일에 서투른 게 익숙하고 당연해졌다. 그러다보니 점점, 책임이 따르는 일은 무섭고 또 어떤 날은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늘 해던 일이 갑자기 두렵게 느껴지거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마다 밤외출이 잦았던 그 때 겨울이 생각난다.

어떤 날은 그때보다 더 바닥을 기고 있는 날일지라도, 기어다녔던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 한참 기어다니고 멈춰있어도 다시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첫 걸음마를 떼던 날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뭐라도 붙들고 한번 더 시도해보는 마인드와 조금의 씩씩함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좀 어설프더라도 될때까지 해보고 한번 더 나아가려고 하는 게 맞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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