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한 Aug 08. 2022

내 졸업식엔,  아무도 안 와도 괜찮아요

왜냐면, 나도 안갔으니까

학창시절, 수많은 행사 중에 가장 반가운 행사는 방학식이었고 가장 귀찮은 행사는 졸업식이었다.

누구보다도 집을 사랑하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집순이인 나는 집에 하루라도 더 붙어있고 1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는게 중요한데, 길고 지난한 교장 교감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거치고나면 친구들과, 가족들과, 담임 선생님과도 사진을 찍고 어색한 포옹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끝이 나는 이 연례행사가 너무 길었다.

'함께해서 즐거웠고, 담에 보면 또 즐겁겠지' 마인드였기 때문에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고, 어차피 동네 학원에서 또 마주칠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중학교 졸업식 땐 부모님과 이모, 외할머니가 오셨다. 일주일전부터 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같이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을 고사하고 저녁까지 이모들이랑 할머니랑 집에서 놀 생각에 좀 신이 났었는데 이게 웬.. 가족이 모여앉은 분위기는 활발한 듯 어색했고 밥을 먹고 일어나자마자 엄마는 시간 맞춰서 학원에 가라는 말을 남기고 이모와 할머니와 함께 일어나셨다. 아빠도 다시 회사로 가셨다.

비가 오는 겨울날, 아무도 안오는 학원에서 선생님과 치킨을 시켜먹고 테트리스를 했다. 졸업식이라고 혼자만 신났던 게 민망하고 화나서 저녁에 엄마를 보자마자 심통을 부렸고 다른 일로 심각해보이는 엄마 표정에 민망해져서 방으로 다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10년쯤 지나서, 내 졸업식 때문이 아니라 집안에 정말 급하고 중헌 일 때문에 모이기로 했었다는 걸 눈치껏 알게 되버리면서, 한번 더 민망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3년 내내 좋은 추억 하나 없는 학교에 남아있는 정도 없었지만, 최악의 성적표를 받고 붙은 대학 하나 없이 가야하는 졸업식을 상상하니 정말인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어디엔가 머리를 처박고 숨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미리 졸업식에 안오셔도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수능 끝나고 한번도 다듬지 않은 머리, 2달 간의 폐인생활로 10키로 빠진 몸으로 교복을 다시 입어보니 와.. 이럴 때 쓰라고 가관이라는 말을 만들었나 싶었다. 화장도 하고 파마도 염색도 하고 이뻐진 애들과 좋은 대학에 합격해서 한껏 들떠있는 애들 사이에서 나는 멍청하게 세 시간을 혼자 앉아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교실 밖으로 나갈 즈음에 도착하셔서 내 꼬라지(?)를 보진 못하셨다.

언젠가 대학생이 되어서 술에 취해서 엄마에게 고등학교 졸업식때 와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사실은 친구 없는 걸 들키기 싫어서 엄마가 안왔으면 싶기도 했다는 말도 했는데, 니 친구 없는거 알고 있었다, 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러면 내가 뭐가 되나.


대학 졸업식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내가 알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도 가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하필 그날 내가 면접이 있기 때문'이었고, 사실은 '졸업식장에서 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도 짜장면에 탕수육도 없이, 학과사무실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나서 학교 앞 카페에서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 대신 3000원짜리 콜드브루를 마시는 호사로 졸업을 마무리했다.


졸업 시즌만 되면 나는 좀스러운 과거가 떠올라서 때론 부끄럽고 때론 아쉽다. 그래도 꽃다발도 좀 받고 어색하게 웃으며 학사모 던지는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좀 나았을까.


앞으로는 이것 말고도, 내 자존심과 기분에 때가 묻지 않게 하기 위해 언제까지고 어떤 일이고 숨기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요즘은 어느 회사에 면접 봤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경인권이나 경상도 쪽에 있는 곳'이라고 말하며, 이 글을 서랍에 다시 넣어야 하나 싶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채사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