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만에 퇴사

공황장애가 왔다.

by 히비스커스

공장일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관공서에서 2달 일한 적이 있는데,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사진이나 서류를 검토하는 게 업무의 전부였다.

당시 주로 하는 일은 sns를 돌아다니며 위법을 찾아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기에 부담이 없었다.

마지막 날 찾아낸 개수로 순위를 매겼는데, 항상 팀원 중에 꼴찌를 했다.

늘 뒷자리에 앉았는데, 한 번은 하도 지루한 나머지 졸았던 적도 있다.

나와 함께 근무했던 여성분이 계셨는데, k7을 몰고 출근하셨다.

사업하는 오빠가 형제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줬다고 했다.

형제가 몇이냐는 나의 질문에 다섯이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중년이지만 상당한 미녀였던 그녀는 집에 있는 것보단 이렇게 나와 움직이는 게 더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월급을 받자, 남편과 자신의 테니스체를 샀다.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일했던 거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청소기를 분해하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쉽게 말해서 세척작업이었다.

에어건을 청소기 뒤에 있는 홈에 쏘면 폭발하듯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터져 나온다.

손이 들어가는 양쪽 구멍에서도 먼지가 새 나왔다.

유리막이 있었지만, 두 개의 커다란 구멍 때문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순 없었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는 건 괜찮았지만,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냄새는 참기 어려웠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백개 가까운 청소기를 세척하지 않았나 싶다.

걔 중엔 정말 말도 안 되게 더러운 것도 꽤 있었다.

퇴근을 한 후에도 냄새가 머릿속을 떠다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이 공장의 노동자 대부분은 20대에서 30대 초반이다.

솔직히 처음 내 눈엔 모두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실습 나왔나?'


그들과 같이 근무하는 내 모습이 조금 어색했다.

모두 청소기를 세척하고, 수리하고, 조립하는 업무였다.

이 공장은 한 두 달 다니면, 모두 정직원으로 승격되는 구조였다.

그렇다고 정직원의 월급과 알바의 차이가 큰 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10살쯤 많은 할머니가 계셨는데, 정직원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 나이에 애들하고 같이 정직원하면 뭘 해? 돈만 받으면 됐지.'


그녀의 말로도 정직원이 큰 벼슬은 아닌 게 분명했다.


나는 신입이었기에 제일 힘들고 더러운 일을 맡았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나은 업무로 이동해 가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누군가 내 후임으로 들어와야 내가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소기를 담는 상자의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이다)

둘째 날, 두 명의 청년이 면접을 보러 왔다.

마른 체격의 조금 맹한 30대 남자와 건장한 체격의 똘똘한 20대 남자였다.

20대 남자는 근무시간 내내 일은 안 하고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서성거렸다.

급기야 조장을 찾아오더니 반나절만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유는 지병이었다.

한두 시간 대충 보니 견적이 나온 것이다.

조장은 일상적인 듯, 한마디의 설득도 없이 그를 보내줬다.


나는 달랐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정도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에 그만 사달이 나고 말았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심장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눈뜬 채 고꾸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매캐한 먼지냄새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날 미치게 했다.

(여담이지만, 친구들은 날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 부른다. 당연히 잘못된 진단이다)

나의 근무환경은 5 발자국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내내 서서 딱 3가지 동작을 반복한다.

청소기가 담긴 상자를 가져온다.

상자 안의 청소기를 꺼내 유리통에 넣고 에어건으로 세척한다.

다시 상자에 담아 원래자리에 갖다 놓는다.


공황장애증상이 찾아왔다.

공장일이란 게, 9시 시작해 10시 반에 10분 휴식 그리고 12시에 점심시간.

다시 1시부터 3시 반까지 근무. 10분 휴식 그리고 6시 퇴근으로 이어진다.

그나마 이 공장은 정시퇴근이 칼같이 지켜져 다행이었다.

9시부터 10시까진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혼자 노래도 흥얼거려 보고, 영화나 드라마 생각도 해봤다.

10분의 휴식시간이 지난 후, 다시 작업대에 서자 숨이 막혀왔다.

간신히 30분을 버텼다.

결국 죽을 것 같아 자리를 이탈해 주변을 돌아다녔다.

로봇처럼 한자리에 서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혼자 노란색 산업용 귀마개를 하고 있었다. (4만 원 상당의 최고가 제품)

원래는 층간소음 때문에 산 물건이었지만 아파트고, 공장이고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참고로 강아지가 위층에 두 마리, 아래층에 한 마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난 휴식시간마다 어린아이처럼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라도 들으면 조금 진정이 되는 거 같았다.

최대한 밝은 척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 못 할 거 같아.'

'그래,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해.'

'미안해.'

'괜찮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알아. 고생했어.'


몇십 군데 이력서를 내서 간신히 얻은 일자리였다.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겨우 3일 만에 관둬야 하나?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처럼 쉽게 때려치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회사에서 쫓겨난 중년의 퇴직자들이 치킨집이나 편의점, 커피숍등의 자영업을 시작한다.

그것밖에 할 게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는 그마저도 할 수 없다.

마가리로 가서 조용히 살다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알베르토 카뮈가 이런 말을 했다.


'딱히 살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죽을 이유도 없다.'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야 했다.

3일 만에 끝난 공장 알바는 내게 더 큰 절망만 안겨 주었다.

만일 내게 그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난 더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더 경미한 공황장애를 겪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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