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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Mar 27. 2023

검정고무신 2

뒷북치는 놈들

내가 얼마나 도움을 요청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기관에 제보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국문과, 영화과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정말 씹더라.

sbs, ytn 기자랑 접촉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설명해도 알아듣지도 못하더라.

저작권에 관해 그만큼 무지했다.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도 제보했다.

다 무시당했다.


대학 은사이자, 유명감독이었던 분이 답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은 건강이 안 좋고, 현업에서 떨어져 있으니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거였다.

난 괜찮다 했다. 대답해 줘 고맙다 했다.

진심이었다.

그들의 비겁함을, 무책임함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잘난 척, 정의로운 척만 안 하길 바란다.


딱 한 사람. **대학 교수가 연락을 해 왔다.

난 아내와 그 사람을 만나러 서울로 갔다.

없는 돈에 아내가 구운 쿠키와 비타오백 대자를 사갔다.

(소자를 살까 10분 정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와 난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사정을 알겠고, 억울하겠다고 위로했다.  

감정결과를 보며 어이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난 그의 감정서를 들고 판사에게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의견서를 보내지 않았다.

단 몇 줄이면 된다고 사정했지만,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판사에게 자료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지만, 무시당했다.

자료요청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도 난 대법까지 갔으면, 내가 승소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럼 나 역시 죽었을지도 모른다. 대기업 하고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싸움인지 정말 모른다.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라고 하면 아마 비슷할 것이다)


난 모든 정당의 국회의원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내 생일에 국회로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이 미친 짓을 아내는 묵묵히 따라와 주었다. 덕분에 국회의사당을 구경했다며 웃었다)

저작권에 관해 정치인, 공무원 작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난 나에 관한 내용을 프린트해 국회의원들과 문화체육부 공무원들, 그 자리에 모인 작가들에게 돌렸다.

국회의원비서관과도 통화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금 검정고무신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려 모인 사람들 중 내가 만난 사람들이 있다.

난 그들에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외면했다.

웃긴다.

작가가 죽으니, 마치 자신의 일인양 발 벗고 나선다.

기사나 방송을 보면, 내가 붙잡고 사정했던 여야 정치인들, 공무원들, 관계자들이 몇몇 보인다.

가증스럽다.


추신: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지방의 한의사분이 선물을 보냈다. 감사했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그 분과 난 일면식도 없다. 이미 충분했다고, 더 이상 싸우지 말라며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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