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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Apr 28. 2024

자기 앞의 생

책을 산다는 것

이 책을 몇 번 읽었다.

감동이 있거나, 재밌어서 읽은 건 아니다.

눈에 띄어서 읽었다.

사실 내 책도 아니다. 아내 책이다.

부부는 경제공동체니 나에게 소유권이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난 책을 보며 낙서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책이 옆에 있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내용을 메모하기도 한다.

뭔 어떤가? 내 책인데.

누굴 빌려줄 것도, 팔 것도 아닌데.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번역을 아주 잘 한 거 같다.

한국의 소설가들보다, 더 잘 읽힌다.

글을 읽는데, 걸리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놀라운 정성, 장인의 솜씨가 느껴진다.

(물론 나의 문학적 소양이 높지 않기에 전적으로 개인의견이다)


얼마 전, 어린이 소설을 써 볼까하고 제일 유명한 책을 빌렸다.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

성인도 어려운데, 아이들이 쉬울까 의심된다.

물론 나만 어려울 수 있다.

참고로 그 책은 '스무고개 탐정' 이다.

솔직히 한 문장 넘어가는 게 고역이었다.


'자기 앞에 생'의 내용은 나에게 1도 감명을 주지 못했다.

작가는 노년에 권총자살했다.

그는 두개의 필명을 썼는데, 유서에 자백했다.

세상을 불신하고, 미워했던 거 같다.

근데 또 사랑받고 싶었던 거 같다.

계속 소설을 쓴 거 보면.


어쩜 이 모든 감정에서 벗어나는 게 기쁨이 아닌가 싶다.

오롯이 나의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는 거.

미워하던, 사랑하던 신경쓰지 않는 자세.

내가 중학교 올라가며 첫 배운 내용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란 말이다.


한국인이 자살율이 높은 건, 어쩜 너무 끈끈한 관계로 이어져 있기 떼문이 아닐까?

엄마 친구 아들의 삶이 자신과 연결될 정도로.

엄마 친구 아들 한 명이 서울대를 가면, 대기업에 취업하면, 결혼하면 수백명의 자식들이 욕을 먹는다.

단 한 명이 간 건데.


내가 고등학교때, 입시가 끝나면 정문에 서울대 입학생의 축하 현수막이 붙었다.

몇 명, 아님 한명을 위해서 전교생을 열등생으로 만드는 엽기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해는, 학교의 치욕이 된다.

모두 학생들 잘못이된다. 죄인을 만든다.

당연히 학기 내내 전교 1등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선생이든 학생이든.

그가 곧 학교다.

지금도 똑같다. 한국 교육이 나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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