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츠 카인드 오브 어 퍼니 스토리
내가 아침을 싫어 한다는 게 우울증임을 늦게 알았다.
아침이 싫은 건, 친척들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난 내 가족에게 대단한 걸 원하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더 나은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도 내 가족에게 그리 좋은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난 늘 엄마에게 아침이 싫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고,
힘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셨다.
'왜 그러니, 엄마는 아침이 참 좋았는데.'
난 지독히 싫었다.
제일 좋은 시간은 저녁이다.
조용필 가사처럼 모두 집에 돌아가는 시간.
영화는 지루하다.
별 내용없다.
부잣집 도련님의 말랑콜리한 감정이다.
다만, 그가 느끼는 두려움은 사실이다.
가시에 찔려도 아픈 건 아픈 거다.
물론 작가의 고통이 가시란 건 아니다.
고통에 관한 의견일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난 소아우울증이었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치료 받는 다는 건 코미디다.
난 참아야 했고,
내색하지 않아야 했고,
밝은 척 해야 했다.
대신 난 무기력해졌다.
평생을 살며,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사극은 안 본다.
왕이니 공주니 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
대신 외로운 사람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처받은 사람 이야기를 좋아한다.
위 영화의 원작 소설가는 32살에 자살했다.
소설이 히트하고, 영화로 만들어지고
방송작가도 됐지만, 자살했다.
왜 일까?
원하는 것이 있고,
되고 싶은 모습이 있는데,
원치 않고,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 잃어 버린 건
영원히 가질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다.
말로 설명할 수도,
누굴 설득할 수도 없다.
목사, 신부, 중, 재벌, 소설가
못한다.
아무도 못하다.
못한다는 사실을 알야야 한다.
절대 못한다.
대신 자신이 어떻게 죽을까 궁금해 할 순 있다.
굳이 자살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빅 피쉬'가 괜찮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