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호마이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를 둔 초등학생 소녀의 이야기다.
언뜻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어바웃 어 보이'
그 영화에 등장하는 소년 역시 우울증을 앓은 엄마가 있다.
아빠는 등장하지 않는다.
엄마는 거기다 독특한 의상과 과잉 애정표현까지 한다.
당연히 소년은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소년은 엄마를 너무 사랑해? 개의치 않는다.
아니 참아낸다.
그것이 엄마를 위한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창작답게
기적같은 일이 생긴다.
바람둥이 백수가 소년을 구원한다.
친구 하나 없던 소년은 백수 아저씨와 함께 지내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당연히 엄마의 상태도 좋아진다.
소년은 짝사랑하던 여자애와 데이트도 한다.
해피엔딩
엄마의 슬픈 날은
상당전문가가 쓴 만큼, 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녀는 사정을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엄마는 치료를 시작한다.
소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또래를 만나
위로받는다.
엄마가 병으로 힘들어도, 자신은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이 엄마가 바라는 일이다.
'햇볕 쨍쨍한 슬픈 날'이 된다.
주말에 우연히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다.
보통은 안 보는데, 그날은 여러 사정이 겹쳤다.
엄마가 고등학생 아들을 때려 죽인 사건이었다.
정말 매로 때려 죽였다. 7시간에 걸쳐.
큰 이유도 없다.
다만 앞집 여자가 시켜서 그런 짓을 했다.
앞집 여자는 어렷을 때 부터 여자의 남매를 가르쳤는데,
악한 성질이 숨어 있어 벌을 줘야 한다고 여자를 몰아 붙였다.
여자는 앞집 여자의 말대로 아들이 때린 것이다.
그 악함이 뭔지도 모르고.
소년은 단 한번도 저항하지 않고, 맞다가 죽었다.
그 아들은 서울대를 언급할 정도로 공부를 잘 했던 거 같다.
아내의 말론 자신의 자식보다 공부를 잘해 샘이 났던 게 아닌가 싶다고 한다.
일면 논리가 있다.
앞집 여자가 끔찍하게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한 걸 보면.
프로그램은 다 보자, 픽 웃음이 낫다.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왜 웃는 지 알아?'
'몰라'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저 소년을 보니, 팔자 좋은 소리였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난 언제나 나의 믿음을 의심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정말 맞는 가 의심한다.
나의 가장 큰 실수들을 보면, 성급한 결정들이 많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삶은 누구에게도 기대면 안 된다.
누구도 나만큼 내 삶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할 유일한 일은, 내 삶을 사는 것이다.
내 삶을 고민하고, 오직 내 삶만을.
자식, 친구, 타인. 오지랖이다.
그 시간에 자신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인생은 너무 짧다.
그냥 짧은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점점 아파진다.
누군가, 저 엄마와 앞집 여자를 가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기회는 분명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