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얼마 전,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를 읽었다.
난 봄밤만 읽었다.
솔직히 난 책을 빨리 읽지 못한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경험은 수 십년 전으로 올라간다.
그것도 거의 만화책이다.
만화책은 그림이8할이다.
요즘은 신기하게, 만화책을 거의 안 읽는다.
웹툰이고 애니메이션이고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땐 평생 만화책만 보고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용돈을 받으면, 헌책방으로 달려가 가장 두꺼운 만화책을 몇 권 샀다.
재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보는 게 좋았다. 물론 그때도 거의 코믹을 골랐던 거 같다.
운전 중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같은 책에 있는 단편 '이모' 가 나왔다.
나는 읽지 않았기에 관심이 없었는데, 아내는 굳이 스토리를 설명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짧게 대충 요약했다. 내가 말했다.
'부럽다.'
'난 불쌍한데?'
'내가 살고 싶은 삶이야.'
'내가 미쳐.'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설 속 이모는 50대 중후반으로 경기도 외곽에 일억 반전세 아파트에 산다.
가진 현금은 오천만원. 그 돈으로 아무 일도 안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는다.
하루 종일 읽다 집에 와 식사를 한다. 월세 30만원 생활비 35만원.
어떤 디지털기기도 없다.
거의 수녀나 비구니다.
물론 실제 수녀나 비구니는 절대 검소하지 않다.
또한 저 돈으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살던 이모는 췌장암에 걸려 사망한다.
그녀가 누리던 삶은 2년 남짓이다.
아내의 설명만 들은 난 그녀가 정말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행복은 조건때문에 가려진다는 게 작가의도라 짐작했다.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게 걸려, 난 할 수 없이 소설을 읽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
이모는 행복했던 건 맞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행복은 아니었다.
모든 관계를 끊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행복이다.
참선이나 명상 같은 의미였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모는 결국 유산을 남기고 죽었다.
그것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죽으면서도 다 버릴 수 없는 게 인간인가 보다.
나 죽은 뒤, 남은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고 그걸 왜 신경써야 하는지.....
그저 인간끼리의 약속일 뿐인데.
아무 욕망이 없던 그녀가 그렇게 한다.
그 번뇌가 또 그녀를 괴롭힌다.
차라리 돈에 미치는 게 더 자유로울 거 같다.
난 행복을 모른다.
그래서 이모처럼 행복이 없는 삶을 바랄지도 모른다.
슬픔은 알기에 그것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행복을 모르면, 상상이 불가능하다.
그저 남들의 행복을 쫓을 뿐이다.
한국인의 행복은 너무 단순하다.
집, 차, 해외여행. 현금.
이게 있으면 배우자는 알아서 따라온다.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다.
이건 대학으로 귀결되고, 자살로 이어진다.
나만 행복을 모르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