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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옥수동

옥수동의 역사 3

by HWP


두모포는 조선시대에 서울을 지나는 한강 동쪽의 주요 나루터였습니다. 한강 상류에서 오는 고추, 마늘, 감자 등의 전곡과, 목재, 시탄이 모이는 곳으로 크게 번성했다고 합니다. 또한 한강을 끼고 있는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어서 서울근교에서는 드물게 한적한 곳으로 많은 유적과 일화가 남아있는 유서깊은 동네입니다.

옥수동의 옛 지명인 두모포나 두뭇개는 동국여지승람이나 연산군일기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왕이 금표 안길을 따라 두모포(豆毛浦)에 놀이 가는데 이때 1000명의 궁녀가 뒤따랐다.'


조선 시대 '연산군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 입니다. 한강과 중랑천 합류부에 있어 오랫동안 '두 물이 합쳐진다'는 뜻의 '두물개' '두뭇개'로 불렸다는 것은 이미 적은 바 있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두모포'입니다.


조선 세종 1년(1419)에 이종무를 삼군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정현을 삼군 도통사(都統使)로 하여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對馬島]을 정복한 일이 있다는데 이를 기해동정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 출정식이 열린 곳이 바로 두모포, 즉 지금의 옥수동 근처라 하고 세종이 직접 여기까지 행차하여 승리를 기원하였다고 전해지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옥수역 건너편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스크린샷(55).png 옥수역 앞에 있는 기해동정 기념비

또한 세종이 젊은 문신들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세웠던 독서당을 중종이 지금의 독서당터 자리로 옮겼다는 내용도 등장합니다.


조선 명종 대에는 명종의 모후였던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당대의 권신이었던 윤원형의 첩인 정난정이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기우제를 지낸답시고 쌀밥을 지어 두모포에서 물고기들에게 투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야사에 의하면 두모포에서 큰 물고기가 낚여 올라와서 이들의 몰락을 예언했다는고도 합니다. 문정왕후는 이로부터 3일 후에 세상을 떠나고, 윤원형과 정난정 일파도 숙청되어 그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네요.

최근 문화재청에서 매봉산과 한강변 두모포일대가 그려진 중종때의 한강 뱃놀이 그림 '독서당계회도'를 보물로 지정할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조선시대 그림에 등장한 우리 동네가 궁금하신 분들은 사진 참고해주세요.


KakaoTalk_20250309_151721154.jpg 독서당계회도 (문화재청)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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