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이야기
'왕이 금표 안 길을 따라 두모포(豆毛浦)에 놀이 가는데 이때 1000명의 궁녀가 뒤따랐다.'
조선 시대 '연산군일기'에 옥수동의 옛 이름 '두모포'가 등장합니다. 한강과 중랑천 합류부에 있어 오랫동안 '두 물이 합쳐진다'는 뜻의 '두물개' '두뭇개'로 불린 우리 동네의 한자 이름이 '두모포'인 거죠.
두모포에 있던 옥 같은 우물, 왕에게도 바치던 깨끗한 물을 자랑하던 우물인 옥정수 때문에 옥정숫골이라고 불리던 우리 동네의 이름이 후에 옥수동 된 것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붙인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제가 한성부를 개편하면서 두모포에 3개의 정을 설치하고 그중 하나를 "옥수정(玉水町)"이라 명명하였는데 광복 이후 일제의 잔재를 지우기 위해 행정단위를 동으로 변경한 것이 "옥수동"이라는 이름이 우리 동네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옥정수은 1960년대 도로 공사로 매몰됐는데 사진에 보이는 저 난간아래 어디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왕에게도 진상될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물이었다는데 없어진 것이 안타깝네요.
조선시대부터 유래한 이름이지만 일제강점기의 잔재도 포함되어 있는 이름이라고 하니 "옥수동"을 부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