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네 시

오후 네 시

by 지니샘

아무것도 하지않지만 격렬하게 하고 싶지 않은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오래 가지 않길 바랄뿐이다.


눈을 뜨면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이나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나혼자 덩그러니 침대에 남겨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휴대폰으로 시간 확인하는 척 하면서 SNS를 헤집고,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열한시가 된다. 일어나려고 마음을 먹는 게 삼십분, 이제 일어나면 저녁 전까지 누울 수 없음을 알기에 조금 더 미적거린다. 밥 먹고, 외출하고 나면 다 소화되거나 씻고 나오기 까지는 침대에 올라갈 수 없다. 열두시 가까이에 배는 고프지 않지만 오늘을 살아갈 식량을 탐색한다. 엄마가 무엇을 해두고 가셨나, 뭘 먹으면서 오늘을 채워볼까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냉장고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그리 빠르지는 않다. 먹을 반찬을 꺼내고 불을 올린다. 식기를 꺼내 내 몫만큼 덜어내고 밥을 해동한다. 하나씩 티비 앞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면 준비가 끝난 것 같지만! 중요한 게 남았다. 채널 목록 중 내 이목을 끌만한 프로를 찾아 확인 버튼을 누르면 끝! 입에 밥이 들어가기 전에 청소기 밀 준비도 한다. 콘센트를 다 뽑고 책상을 정리하고 바닥에 있는 것들은 죄다 위로 올린다. 일단 깔끔하게 바닥 청소를 해야지 내려올 수 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하면서 밥을 먹는다. 이 시간만이 나의 온전한 자유시간이다 하지만, 15분 내에 끝난다. 오래 씹기 해야 하는데. 냉장고 털이범처럼 과일이나 후식을 먹어주면 하루 중 메인 식사가 배 터지게 끝난다. 이것도 본가에 와야지 할 수 있는 루틴이다. 나에게 맞춰진 재미난 프로를 끄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끌 용기. 후식까지 다 먹고 나면 용기는 저절로 솟아나 꺼지지만 그 전까지는 고개도 들지 않는다. 바로 설거지를 시작한다. 위에 유튜브를 세팅해 두고 말이다. 아주 미디어에 농락 당한 사람의 하루 같다. 말끔하게 헹주로 싱크대를 정리하고 세탁기 확인하고 청소기 밀고 나면 집처럼 나를 깨끗하게 하고 싶어진다. 송글송글 땀을 조금 내면서 머리까지 하면 벌써 두시다! 이 길로 도서관에 가면 외출 성공에 오늘 알찬 하루가 기다리지만 나가지 못하고 여기서 미적거리면 어느덧 네시가 온다. 네시? 혼자만의 시간 1시간 남았다. 이제 끝이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긴데 짧다. 저녁까지 일을 미룰지, 엄마 오기 전 막판 스퍼트까지 할지 나혼자만의 싸움을 하기도 한다.


다섯 시,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다섯 시에 돌아오신다. 거리가 가까워 마치고 10분 내로 집에 오시는데 엄마가 오시면 엄마와 함께 하는 하루의 시작이기에 내가 혼자 하던 것은 3시간 뒤쯤에야 할 수 있다. 이제 관계 맺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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