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제가 바라보고 믿고 있는 세상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들이 저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한 이야기이지만 익숙한 틀에 갇혀 외부의 현상들을 너무 제 식대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교수님께서 주신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 두려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혹시나 제가 대상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놓치고 저만의 미끄러짐에 빠져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믿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믿는 것을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라는 이야기는 질적 연구를 시작하는 저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질적 연구자는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현상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일 때, 그 존재는 비로소 현실화 되어서 제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제가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해서 그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단지 제가 눈을 돌리지 않아 몰랐을 뿐입니다.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세상을 향해 던져내어 현상을 불러내고 그 현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대상을 지향하는 순간, 현상에 의미 부여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제가 지향하는 시선과 방향이 저의 경험과 지식, 즉 제가 믿는 것들로 좁게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만을 기준으로 삼아 현상을 해석하는 것은 현상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저에게서 왕따 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개굴대며 저만의 시야와 목소리에 만족하는 모습이 아닐까,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세계가 좁다는 사실 자체가 가여운 것이 아니라 그 좁은 세계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단정해 버리는 오만함이 더욱 갸엾게 느껴졌습니다.
따라서 제가 이뤄가야 할 질적 연구자에게 필요한 자세는 의미를 부여하되 언제든 그 의미에서 미끄러질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시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발견하되 그 의미가 대상의 전부가 아님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할 것입니다. 제 눈에 비친 세상이 “이것은 기적이다” 라는 말을 한다면 저는 그 기적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지 바라보고 의심해야 하며 숨어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미끄러짐의 태도는 게으름과의 싸움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모르는 세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고 궁금해 하면서도 정작 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 책을 읽고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일에는 소홀한 저이기 때문이죠. 질적 연구를 시작하고 질적연구자가 되어가며 더 많은 세계와 대화할 수 있도록 질문하고 의미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경계심을 품고 많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알아가며 또 겸손하게 연구에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