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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0원의 행복

숫자에 새겨진 기억

by 지니샘

어제부터 두근대던 날이다. 운동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카레가루를 사서 집에서 카레 요리를 하고 냠냠 먹는 즐거운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함께 뭔가 내가 맛있는 걸 한다는 자체에 흥분하며 운동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카드를 꼭 쥐고 편의점을 들어갔다. 궁금해서 못 견뎌 편의점 카레가루라고 네이버에게 물어보니 죽을 파는 쪽에 카레가루가 같이 있는 것 같다고 어떤 한 지식인이 말해줬었는데, 없다! 없다니. 절망에 빠지려는 순간 생각보다 넓은 편의점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설마 이 쪽에? 싶은 곳도 찾아보면서 노란색 봉투에 매운맛 또는 약간 매운맛이라고 적힌 글자를 계속 찾았다. 어! 있다! 찾았다! 야호! 소리 내지 못한 외침이 나를 가득 메웠다. 지금 내 기분보다 더 맵지 않은 약간 매운맛을 들고 가격을 확인했다. 2,800원. 체크카드로 돈을 옮기는 손이 가볍다. 산뜻하다. 즐거이 2,800원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할 일을 몇 가지 끝낸 후, 고대하던 일을 실행했다. 미리 재료는 꺼내놓았고! 양파를 먼저 썰었다. 은근히 양파가 잘 썰려서 요리왕이 된 것 같았다. 아뵤. 우쭐거리며 다 썰어낸 양파는 해바라기유를 두른 팬에 넣어 볶는다. 볶아야 하는데 물이 많이 나와 거의 삶아졌다. 부드럽게 먹지 뭐! 양파 카라멜라이징을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괜찮다. 난 좋다. 양파가 흐물거릴 때쯤 생각보다 물이 많아 양배추를 투하했다. 물도 넣고 양배추가 숨이 죽도록 끓였다. 이때다 싶어 단호박도 넣고 물, 카레가루를 다 넣은 후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안 하던 요리를 하는 것도 재밌고 내 입맛대로 먹는 것도 좋고 너무 행복하다. 뭉근하게 끓여낸 카레를 떴다. 오늘 물을 딱 적당하게 넣어 질지도 꼬들치도 않은 밥 위에 카레를 올리고 주변을 정리했다. 상상만큼 뇸뇸 먹은 카레는 정말 맛있었다. 다음에 또 2,800원을 지출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맛이었다. 너무 뿌듯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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