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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 > 내 인생 > 오늘 하루 > 타협

외출 준비

by 지니샘

김민식 님을 아시는가? 모르신다면 꼭 한 번 강연을 들어보길 바란다. 저자 특강은 아니었지만 ‘이 분 책을 읽지 않았는데 가도 괜찮을까?’라는 이전의 걱정이 싸악 ‘안 들었으면 어쩔 뻔했어?’로 갈아탔던 어제였다. pd였던 본인의 이전 커리어부터 번역가, 강사, 저자 여러 직업을 거치고 사이사이의 이야기에서 “자 이제 연애 특강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까지. 도서관에서 답을 찾던 그를 무한 신뢰하게 되었다. 나도 기초 영어 회화책 하나 사서 외우겠다 다짐했다. 마지막 연애 특강을 가장한 인생 특강은 집에서 무기력했던 나에게 하루를 살아간 이유와 가치까지 만들어 주었다. 들이대고 상처받지 말고 올인하라는 이야기가 나에게 위로로, 큰 힘으로 다가왔다! 나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인생의 롤 모델이 생겼다.


그냥 사랑해 버리기로 했다. 내 마음만 조금 틀면 달라질 일이었다. 하루를 바쳐야 하는 건 알지만 손이 느린 나를 탓하면서도 집중을 기하다 보니 짜증이 났다. 하기도 싫어지는 거다. 안 한다고 할걸 여섯 글자가 내 머리를 금세 지배했다. 다시 마우스에 손을 올렸을 때 사라졌지만. 왜냐면 내가 나에게 기대했던 만큼 센스가 발휘되지 않았고, 앞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거대한 산처럼 다가와 그림자만으로 나를 힘껏 짓눌렀기 때문이다. 새싹이 오르고 꽃이 피는 봄에 집 의자에 앉아 딸칵거리기만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내가 싫었다. 그 일이 아니라 내가. 억지로 강연 듣자 나오면서 숨을 쉬었다. 난 역시 바깥에 나와 살아야 해. 귀여운 꽃을 만나 인사도 나누며 기분 좋게 바깥을 만끽했다. 다시 집에 가기 싫어서 책을 들고 나왔는데 줌 모임이 생각나 밖에서 할 수는 없나 고민하는 내가 웃겼다.


바깥세상에서 에너지를 받지만 책임이 있을 때 큰 무게로 안고 나오지 못하게 나 자신을 막는다. 카페에서도 어디 다른 데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집에서 딱 집중하고 끝낼 일은 그렇게 한다. 후회도 하지만. 후회하지 싫다면서 또 일을 만들고 하고 나가고 싶어 하는 나다. 연이은 일에 지쳐버리고 일상을 놓쳐버린 신체와 정신이 잊고 있던 나의 이야기를 찾았다. 강연 덕분이다. 오늘 하루의 즐거운 포인트, 특별함을 찾기로 했다! 7시에 강연을 보러 가는 특별함! 그걸 위해 씻고 화장도 한 내가 나를 활기차고 기분 좋게 만들었다. 소소한 특별함이지만 효과는 굉장히 크다! 특별하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 삶에 활력이다. 작으면 작을수록 더욱 발견하는 재미를 만드는! 이걸 위해서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나!


어제에서 이어진 오늘은 역시나 내리 몇 시간 동안 진행된 작업에 혼자 지쳤다. 중간에 멸치 먹는 시간은 특별한 행복이었지만 지나가자 다시 내 위로만 먹구름이 드리웠다. 재미없어, 생각할 때쯤 끝났다! 수업이 끝나면 9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특별함! 밤 운동! 9시 넘은 시간에 운동 가는 건 처음이다! 난 항상 걸어서 운동하러 가다 보니 늦은 시간에 가면 혹시 몰라 불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가서 다녀오기! 운동 가는 길에 새로운 방향이 생기고, 가보지 못한 시간대를 경험하는 특별함 속에서 땀과 함께 스트레스가 흘러내려갔다. 상쾌함만 남은 밤! 이렇게 기복이 있으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딱 좋은 지금을 누리며 나에게 올인한다. 즐거운 타협을 거치며 행운 가득하게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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