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난다.
아빠가 우리 곁에 더 이상 생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난다. 이런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아직 나는 아빠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빠는 누구보다 삶에 열정이 가득하고 욕심이 많은 분이셨다. 능력이 출중한 만큼 성과도 많이 이루셨고, 그 이상의 욕심도 내셨던 분이다. 그런 기질을 나 또한 물려받은 것 같다. 특히 아빠의 자존심은 말도 못 하게 강했다. 타인의 평가나 이목에도 여느 사람들만큼이나 신경을 꽤 쓰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이 모든 욕심과 질투, 욕망, 타인의 이목이나 평가 따위는 죽음 앞에 부질없다고 생각되었다. 냉정하게도 하느님, 부처님은 아빠가 어느 것 하나 손에 쥐고 저승길에 오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갖고 갈 수 있다면 오직 가족, 지인들과 보냈던 추억, 행복했던 감정뿐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하셨다고 자부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빠는 늘어진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말기암 환자일 뿐이었다. 병원에서 써준 진단서에 아빠의 직업인 "변호사"라는 단어만이 아빠가 예전에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람을 나타낼 뿐이다.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본 이들은 아빠가 왕년에 잘 나갔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편 학창 시절만 해도 나는 지금보다 철이 없었다. 직업활동, 소득활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 돈을 버는 일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그러니 부모님이 용돈을 더 주길 항상 바랐다. 어느 날은 아빠가 타지에서 생활할 때 비상시에 쓰라고 준 신용카드로 기분전환한다며 파마를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차마 나를 꾸짖지는 못하고 째려봤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도 사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아빠 돈 잘 버는데 그 정도 쓰는 것이 뭐가 대수인가 싶었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하면서 돈을 귀하게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빠가 힘들게 버는 돈인 만큼 정말 필요한 곳에 사용했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빠가 저승길에 갖고 간 것이라고는 마지막 순간에 입고 있던 늘어진 티셔츠뿐이라는 사실은 삶이 무상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부와 명예를 이룩하기 위해 욕심을 한껏 내며 삶을 살지만 죽음 앞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난 노력한다. 눈과 코와 귀 각종 감각기관으로 느껴지는 자극적인 요소들에 현혹되지 말자고 말이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챙기자고 말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