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불씨는 어쩔 수가 없다.

아빠의 죽음을 외면하려고만 했었다.

by 김정은 변호사

나에게 시련은 연달아 찾아왔다. 할머니의 죽음, 강아지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연이어 아빠의 죽음까지 찾아왔다. 가족의 죽음은 나의 생존에도 영향을 끼쳤다. 생명이 유한하고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었다.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간 적은 많았지만 사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죽음은 이처럼 남일일 뿐이었다.


아빠 또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년 3월만 하더라도 자신은 문제없다면서 자신을 병자취급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렇게 삶의 의지는 단단했고 나는 철석같이 믿었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마르고 허약해지셨다. 어느 날 아빠가 산책을 다녀오시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힘겹게 걷고 계셨고, 내가 말 거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삶의 불씨는 그렇게 꺼져갔다.


우리는 백 년 만 년 살 것처럼 욕심 한가득 내며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백 년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이 나무처럼 긴 세월을 살기란 쉽지 않다. 죽음 앞에 자비란 없다. 냉정하게 숨은 끊어져 버린다.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들은 우리 인간을 얼마나 우매하다 여길까 싶다. 삶의 기한이 뻔히 정해져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초연한 자세로 삶을 살지 않으니 말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제발 더 살게 해달라고 애원해 본들 그 소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부동산 임대차계약처럼 계약기간 만기가 되면 여지없이 퇴거를 해야 하는 것이다. 혹여 임차인의 사정을 임대인이 봐준다고 해도 며칠 혹은 한 달 정도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의 모든 것들을 잠깐 렌털하여 살뿐이다.


아빠가 와병신세에 있을 때, 나는 매일 밤 눈물로 기도를 했다. 제발 아빠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 아빠의 병세를 확인하고자 방문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병은 악화되었고, 마지막 순간 아빠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셨다.


사실 고통은 직접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엄마는 아빠가 왜 똑바로 누워서 잠을 못 자는지, 의자에 앉아만 있지는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통증 때문에 침대에 눕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그리고 아빠 스스로도 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런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아빠가 수액을 맞으시겠다고 해서 병원에 같이 갔었다. 그때에도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누워 있으셨다. 아빠는 한평생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셨다. 그런데 쇠약해진 아빠의 그 뒷모습은 참으로 애잔했다.


가끔 누군가 아빠의 죽음을 안타깝게 이야기할 때면 속으로 이런 말을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일 뿐, 불행이 아니라고 말이다. 아빠가 어떤 잘못을 해서 불행을 겪은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의 순리에 따라 생을 마친 것뿐이다. 나도 언젠가는 여지없이 아빠 곁으로 갈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자고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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