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우리 집 강아지
최근 나를 포함한 온 가족이 사랑한,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생각지도 못한 급한 이별이었다. 이별의 예고도 없이, 갑자기 강아지인 버순이의 생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통고를 병원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고 난 후, 정말 그렇게 맥없이 생을 마감하였다. 항상 우리 집 구석자리에 엎드리고 있으면서 귀가한 가족들에게 환대를 해주던 그 모습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아직도 그 모습이 선하다.
생각해 보면, 버순이는 항상 가족들을 기다렸던 것 같다. 집을 떠나 외출 중인 가족들을 홀로 기다리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가족들이 언제 귀가를 할까 하고 문 앞에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 같다. 가족들은 그런 버순이의 모습이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강아지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나 또한 버순이의 입장을 더 깊이 헤아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람과 강아지는 다르지 않냐며,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버순이를 하염없이 그리워할 차례인가 보다. 버순이가 가족들을 짝사랑했던 것처럼, 내가 이번에는 버순이를 짝사랑해야 하는 차례인가 보다.
집에 있는 붙박이 가구처럼 버순이를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제고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순이와의 이별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언제든 버순이가 삶을 마감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점점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 가족들을 지켜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나의 바람, 기대와 달리, 버순이는 떠날 시간이 되자, 훌쩍 떠나버렸다. 마치 떠날 때가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듯이 떠날 채비를 하고 가버렸다. 가족들에게 그 어떤 언질도, 마음의 준비도 충분히 시키지 않고, 홀연히 가버렸다.
만남의 때가 있고, 이별에도 때가 있듯이, 인연 따라 삶이 흘러가는가 싶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될 운명이어서 버순이가 가족들 곁으로 온 것처럼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어야 할 때가 되어서 서둘러서 간 건가 싶다.
이제는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언제고 다시 만나자고 기원해 본다. 버순이도 나와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기를 바랄 뿐이다.
이별은 이처럼 크나큰 아픔을 안겨주지만, 그와의 만남을 후회하지 않는다. 버순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버순이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시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버순이와의 따듯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글로 남겨본다.
즐거웠고, 사랑했고, 행복했다. 버순아. 우리 또 만나서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