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제도
한마디로 혈족과 같이 사는 것과 혈족이 아닌 남과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다르다.
혈족은 원수가 된다고 해도 혈육이라는 이유로 내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계속해서 소환되고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혈족과 죽을 듯이 싸웠지만 언제 싸웠냐는 듯이 가깝게 지내기를 반복한다. 쉽게 화해할 수 있는 관계라고 믿기에 더욱 혈족에게는 예의를 갖춰 행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편 혈족이 아닌 남 즉, 배우자는 헤어지면 그만이다. 계속해서 내 인생에서 전 배우자가 나타날 일은 별로 없다. 단, 그 배우자와 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나도 겪어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간접적으로 이혼 사건을 통해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이와 아빠의 관계는 내가 함부로 끊도록 할 수가 없다.
만일 친권, 양육권을 모두 내가 갖고 온다면 모를까 그런 방식으로 이혼이 성립된 것이 아니라면 아이와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서 전 배우자가 자꾸 내 삶에 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면접교섭권이라는 것이 아이 아빠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아이가 미성년자로 살아가는 동안 아이 아빠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아이 아빠가 아이에 대한 친권, 양육권을 모두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면접교섭권은 그와 별개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이 불씨를 입김으로 끄면 김신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것처럼 잊고 지냈던 그가 불쑥불쑥 내 삶에 등장하는 것이다.
법적인 권리행사를 위해 아이 아빠가 내 삶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밖에 아이의 요청으로 아이 아빠를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내가 그가 너무 싫어서, 정말 단 한순간도 마주하고 있는 게 싫어서, 이혼한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나의 삶에 또다시 그가 등장하며 나를 괴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배우자는 헤어지면 남이라고 했던가? 그 말에는 단서 조건이 숨어있었던 것 같다.
단, 둘 사이에 아이가 없을 경우에만 남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