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적으로 현재를 들여다보기
우리는 목표를 수립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 입학이라는 거사를 치르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매달렸고, 당장 눈앞에 있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성적에 목을 맸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나의 공부를 위해 희생했다. 아버지는 열심히 나의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삶을 바쳤고,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도 없이 오로지 나의 교육과 양육을 위한 삶을 사셨다.
그렇게 19년이라는 오랜 시간 오로지 나의 대학입시만을 위해,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희생의 결과물로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나의 삶이 180도 바뀌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허무하기까지 했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달렸던 것처럼, 또다시 나를 채찍질할 다른 목표를 수립하고 맹목적으로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맞다. 나는 성과, 목표 지향적으로 사는 삶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떤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지만, 삶이 어찌 목표 설정과 달성 그 두 가지로만 이루어질 테냐!
내가 아무렇지 않게 어쩌면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나의 목표달성만을 위해 소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관심 갖지 않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의 생생하고 어여쁜 젊은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중년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으며, 나의 부모님은 어느덧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신다. 내가 키우는 식물은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작은 화분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는 듯 무자비하게 나뭇가지를 뻗고 있다. 나의 친구는 지금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도 하다.
내가 잘 설정했지 확신하기 어려운, 지극히 편향된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목표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일상들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놓치고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내 눈을 가리고 맹목적으로 살았던 덕에 일부 목표들은 실제 달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성취감은 잠시뿐이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내가 포기했던 일상의 평화로움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삶은 길지 않다. 남들이 좋다는 것에 사로잡혀 섣불리 쫓지 말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에 맞는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되, 짧디 짧은 것이 인생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생각을 지금 여기에 묶어둬야 한다.
나의 행복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지금 여기 현재에 있다. 지금 새파랗게 피어오르고 있는 나무 한그루 옆에 바로 나는 현존한다.
현존하고 있는 내 삶에 감사하고, 생기롭게 살아감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