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망선고가 웬 말이지 싶다.
아빠의 병 진단명을 알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종합병원에서 하라는 온갖 검사를 다 하고 여기저기 끌려다녔고 최종적으로 혈액종양내과를 방문했다. 거기서 우리는 의사 선생님이 어떤 조치를 해줄 것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손쓸 수가 없다고 하셨다. 치료가 어렵고 아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저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곧 죽는다니...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긴 아빠가 힘들어 하긴 했다. 의사 선생님의 사망선고를 들은 이후 더욱 아빠가 힘들어 보였다. 숨 쉬는 것도 힘들고, 계속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 화장실에 갔다 오는 것이 너무 버거워 보였다. 얼굴은 해골이 됐고, 발은 퉁퉁부어서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기적 같으면서도 이 상태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중병에 걸렸을 때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의사의 진단이 틀릴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통 같으면 생각하겠지만, 아빠의 사망진단만큼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현대의학으로 치료받는 것은 포기하고 대체의학, 민간의학의 도움을 받아보자며 다른 것들에 기대를 걸어본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 이성 따위는 없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매일 밤을 기도하며 지냈던 것 같다.
아빠가 세상을 뜨기 마지막 날, 화장실을 20번도 넘게 가셨다. 지나고 보니, 저승길에 가기 전에 장을 비워야 하기에 자연적으로 화장실을 자주 가셨던 것 같다. 그 순간에도 나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아빠가 몸속에 있는 모든 독소를 배출해서 이제 괜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예전보다 아주 조금은 더 성숙해진 나는 이제 타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해 보려고 한다. 큰 아픔 앞에 이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감정적 위로만이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