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쓸데없는 걱정들을 반복한다.

나에 대한 메타인지

by 김정은 변호사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유독 밤이 되면 생존불안을 겪는다. 결혼을 한 이후에 그래도 비교적 덜 불안해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어릴 적엔 일요일 밤에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학교 공부, 숙제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마음 편히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일요일 밤 10시경에 하는 '미운오리 새끼'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마음 편히 보지 못했다. 그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프로그램 전체를 시청하는 것을 주저했던 것 같다.


이 모든 걱정은 특정 목표 즉,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을 하거나 승진을 하면 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걱정을 연이어했던 것 같다. 지금도 밤이 되면 내 사업이 잘 될까? 혹은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을까? 란 걱정을 하며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간혹 꿈에서까지 사건, 매출 걱정을 하는 때도 왕왕 있다.


언제쯤 그럼 나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가. 정말 내가 생각하는 최종 목표인 천억 부자가 되면 어떠한 걱정도 없이 평안한 일요일 밤을 맞이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요새 아빠의 서재에서 발견된 '금강경' 해석서를 읽곤 한다. 그 책에서는 이러한 나의 생존불안은 결국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각종 생존불안을 겪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명품차, 명품시계는 사는 순간 크게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은 우리의 생존에 직결되는 요소이다. 이런 음식의 고갈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생존불안은 결국 음식의 부재 가능성에 대한 감정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내가 매월 500만 원을 수입을 올리든, 1,0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든 아니면 1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든 먹고사는데 그렇게 큰 지장이 있을까 싶기도 한다. 물론 매월 100만 원의 매출이 연이어진다면 사업의 존폐를 고민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사실 먹고 싶은 음식을 적기에 먹는 것에 큰 지장은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생존불안은 정말 쓸데없는 불안 감정이라 할 수도 있다.


매일이 각종 불안한 감정 때문에 불행하지만 죽기 전에 언젠가 짧은 찰나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매일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가. 어느 누구도 전자의 삶을 살고 싶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행복한 내가 존재해야 미래의 행복한 나도 존재할 것이다. 행복한 감정도 습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절대 어떤 조건이 성취되어야만 반대급부로 오는 감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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