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들에게는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소설책을 선택할 때, 아니,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책을 고를 때, 줄거리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제목 하나만 달랑 알고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의 경우 대략적인 내용을 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살인사건으로 인해 누명을 쓴다, 여행을 갔다가 사건에 휘말린다 정도로 정말 큰 줄기만 파악할 수 있는 정도만 참고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스포를 피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줄거리를 모르고 내가 직접 읽어가면서 이야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좋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그런 의미에서 『The Wishing Game』은 거의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선택하게 된 책이다. 책덕후인 내가 책장에 꽂힌 귀여운 책 그림들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제목마저도 너무 귀엽지 않은가!
『The Wishing Game』의 표지나 제목은 막연히 『해리포터 시리즈』같은 판타지물을 연상시킨다. 읽는 내내 이제는 어린이, 마법, 판타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해리포터』와 비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판타지가 아니다. 완전히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적인 설정은 존재하지만 판타지적인 이세계관에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는데도 판타지로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그런 부분이 이 소설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by https://unsplash.com/@kerber 어린시절의 환상적인 동화와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
이 소설은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베스트셀러 동화 작가가 자신이 책 속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섬을 현실로 구현함으로써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우리의 환상과 현실을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어린시절 한번쯤 꿈꿨던 내가 좋아하던 동화 속의 세계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소설 속 환상의 섬이자, 실제 존재하는 섬인 클락 아일랜드(The Clock Island)의 묘사도 한 가지 재미가 될 것이다. 물론 섬이 판타지 속의 모습이 아니라 판타지와 비교되면서 현실의(작가가 거주하고 있는) 모습으로만 묘사되어 완전한 환상을 충족해주지는 않는다. 이 묘사들은 마치 우리가 해리포터를 보고 호그와트에 가는 상상을 하며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느끼는 것들을 묘사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환상이 완전히 충족되는 감각이라기 보다는 그 판타지가 현실에서 최대한 판타지를 구현하려고 애쓴, 하지만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목격하는 경험과 유사할 것이다. 『The Wishing Game은 내내 이런 경험에서 헤엄치게 만들어준다.
by https://unsplash.com/@johnygoerend 폭넓은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이야기
『The Wishing Game』은 전체적으로 귀엽고, 희망적이고 말랑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성인, 아마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이 소설이 마냥 교훈적이거나 단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클락 아일랜드(The Clock Island)』라는 가상의 동화책을 중심으로 얽히는 이야기인 만큼 어린이들에게 매력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고 전체적으로 희망적인 톤이지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꽤 현실적이고 복잡한 문제들 역시 포함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다른 딥한 작품들에 비하면 극도로 잔인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충분히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쩌면 어린이들에게 복잡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 어린이들도, 마냥 세상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어린 청소년들에게는 조금 어렵고 무겁지만, 어른들에게는 조금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정도로 여러 세대가 함께 즐기고 공감할 거리가 있을 법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뻔한 낙관의 이야기,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
『The Wishing Game』에서는 이야기를 빙빙 둘러대거나 꼬아대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부분, 엔딩은 어쩌면 너무나도 낙관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 마무리가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어릴 적 꿈꾸고 희망했던 것들을 짓밟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은 '희망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면 현실이라는 복잡하고 압박적인 문제로 인해 꿈과 환상을 모두 잊기 쉽다. 꿈과 희망 같은 단어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심지어 가끔은 그것이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희망. 작가는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어 원서 입문용의 정석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전문적인 배경이나 설정이 크게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낯선 표현이나 어려운 용어들이 거의 없다. 게다가 앞에서도 이야기했 듯 전반적으로 단순한 이야기 흐름으로 인해 복잡하고 어려운 표현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른 대상 소설치고는 난이도가 높지 않고,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더 영어 원서 읽기의 부담을 줄여주는 부분이 있다. 내가 이제껏 읽은 소설 중에 입문용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가볍게 한 권 시작해볼까 싶은 분들에게 정말정말 크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