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점의 여백

일은 더 나아지고, 나는 덜 닳게

by 하랑팀장

MBTI가 P인 나는 ‘미리 해두는 사람’을 볼 때마다 종종 부러웠다. 보고자료를 만든다고 하면, 나는 머릿속에서 먼저 일을 끝낸다. 흐름을 짜고 문장을 다듬고, 슬라이드 톤까지 미리 골라놓는다. 그런데 정작 손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파일을 여는 타이밍은 늘 마감이 코앞에 와서야 잡혔다.


시작만 늦을 뿐, 기준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문장을 고치고, 숫자의 맥락을 다시 확인하고, 한 장 더 깔끔해질 여지를 붙잡았다. 제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엔 묘한 허탈감이 찾아왔다. 결과와 상관없이 기진맥진했다. ‘해냈다’보다 ‘겨우 넘겼다’가 먼저였다.


내 동료 팀장은 계획형, 그러니까 MBTI로 치면 J에 가깝다. 보고 일정이 잡히면 바로 화면을 열고, 일단 한두 장을 만든다. 내용이 완벽하지 않아도 ‘형태’를 먼저 세운다. 목차를 꽂고 빈 페이지라도 자리를 잡아두는 편이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제출하고, 다음 일로 넘어간다. 잊어버릴 줄도 안다.


나는 막판까지 80점을 85점으로, 85점을 95점으로 끌어올리는 사람이고, 그는 80점쯤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대개 내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평가가 아니라 ‘하루의 안정감’을 기준으로 보면, 그의 방식이 더 필요해 보였다. ‘80점이면 된다’는 태도 말이다. 완벽을 향해 달리되, 내 삶을 깎아먹지 않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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