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나를 먼저 돌보는 '케렌시아'의 심리학

by 하랑팀장

3월의 신학기, 새로운 출발을 앞둔 가족들과 강화도로 1박 2일 글램핑을 떠났다. 자연을 벗 삼아 소고기를 굽고, 소시지 꼬치와 군고구마의 온기를 나누는 시간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단순히 먹는 행위만으로도 마음이 느슨해지는 경험, 혓바늘의 통증이 미각을 방해했지만 야외의 싱그러운 공기와 가족들의 웃음소리는 그 고통을 잠시 잊게 할 만큼 달콤했다.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텐트 속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굳어있던 일상에 유연한 균열을 내는 기분 좋은 전환이었다.


다음 날 아침, 라면을 끓여 먹는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잠시 멈춰 섰다. 평소라면 주저 없이 젓가락을 들었겠지만, 성난 혓바늘이 뜨겁고 자극적인 국물을 거부했다. 통증을 통해 내 몸의 신호에 순응하는 법을 비로소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김포 현대아울렛에 들렀다. 5년 전부터였을까. 사람이 밀집한 대형 쇼핑몰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두통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화려한 조명과 끊임없는 음악, 높은 인구 밀도가 뇌에 끊임없이 작은 과제를 던지는 탓이다. “저쪽도 볼까”, “이건 할인인가”, “지금 사야 하나” 같은 수많은 선택지 앞에 놓일 때, 판단 에너지가 급격히 고갈되는 ‘의사결정 피로(decision fatigue)’ 현상을 온몸으로 체감하곤 했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주차장에서 쉬겠다고 선언했다. 혓바늘이라는 핑계는 훌륭한 방패였다. 하지만 막상 화려한 아울렛 정문에 도착하자 마음 한구석에서 익숙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가족과 쇼핑하는 것도 다 추억인데, 그냥 함께 쇼핑을 할까?” 이것은 전형적인 ‘동조 압력(Conformity Pressure)’이자, 부모로서의 역할 모델을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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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팀장 5년차, 겁 없이 빠른 실행력,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여팀장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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