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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Sep 19. 2024

모든 좋은 일은 나쁜 일로 시작된다

 크리스티나 고다 감독의 ‘더 코트쉽 (The Courtship, 이다 : 영원한 사랑 이야기)’은 상영시간 87분의 헝가리 멜로 영화다. 1900년대는 미혼인 성인 여성이 후견인을 선정해야 사회활동이 가능하던 시절이다. 주인공 ‘이다’는 수녀원에서 학생의 퇴학을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가 쫓겨난다. 수녀원 생활이 지긋지긋하던 차에 퇴출당하니 오히려 좋아한다. 12년 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결혼 안 하는 이다를 못마땅해하고 신문에 딸의 구혼 광고를 낸다. 우여곡절 끝에 ‘차바’라는 화가와 결혼하고 진정한 사랑을 알아가는 영화인데, 12세 이상 관람가여서 가족들과 함께 봐도 좋다. 영화에서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은 나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문장이 자주 떠오른다. 나는 모든 일이 다 잘되어 갈 때가 더 위험하다뭐가 하나씩 삐그덕거리는 것이 더 낫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부장 승진을 위한 필기시험을 며칠 앞둔 8년 전 어느 봄날, 퇴근하려고 회사 정문 앞을 나서고 있을 때 하늘에서 내 머리 위로 묵직한 뭔가가 떨어졌다. 직감했다. 이건 새 똥이다.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옆에 있던 후배는 깜짝 놀라서 나에게 물티슈를 건넸다. 퇴근길에 새 똥 맞을 확률이 몇 프로나 될까? 나보다 더 황당해하는 후배를 위해 나는 급히 새똥을 닦아내며 올해 부장 승진되겠는걸’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해 나는 필기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고, 최고경영층 면접까지 당차게 해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8년 전 부장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오죽하면 직원들 사이에서 ‘이생차’라는 말이 돌았을까. ‘이번 생은 차장까지’라는 웃기고 슬픈 의미이다. 회사의 부장 승진율은 3%를 밑돌아서 면접 후보로 들어갔다는 자체가 자랑거리였다. 그 해 나는 필기시험과 면접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연공서열에 밀려 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면접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만족했다그 새 똥의 효험이 아닐지 싶다.  

 회사와 집의 거리가 가까운데도 나는 매일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꽤 걸리고, 아이들을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 출근하기 위해서다. 지난주에 자동차 점검을 받았다. 매일 차를 이용하는 것에 비해 나는 차에 대해 아는 지식이 별로 없다. 별 이상이 없다고 하길래 막연히 다행이다 싶었다. 자동차 점검도 지하에 주차된 차를 가져가서 점검 후 회사에 다시 갖다주는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했다. 며칠 전부터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고 두세 차례 시동을 걸어야 했다. 그럼에도 자동차 점검상 모든 항목이 다 합격이었는데 별일 있겠어? 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퇴근 후 집에서 숨을 잠시 돌리고 딸을 데리러 학원으로 가려는데 시동이 안 걸렸다. 다시 한번 했는데도 되지 않자 불안해졌다. 남편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니 남편은 배터리를 의심했다. 배터리 수명이 2~3년이라고 들었는데 내 차 배터리는 훨씬 더 이전에 교체했다. 보험사에 긴급출동 요청을 했다. 15분~20분 후에 도착한 그 전문가는 보닛을 열고 무슨 손바닥만 한 작은 기계로 배터리 부분을 접속해 보더니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고 바로 진단 내렸다.  


“배터리 교체해 드려요?” 

눈앞에서 배터리가 먹통인 것을 봤는데 내가 교체하지 않을 배짱이 어디에 있으랴? 

“얼마예요?”

“14만 원이요”

“시중보다 비싼 건가요?” 

 나는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했다.

“업체 가서 교체하는 것보다는 싸죠.” 

 들으나 마나 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하 주차장에서 20분가량 기다린 나는 더위에 지쳤다. 무엇을 더 물어보고 흥정할 기운이 없었다. 그냥 수리기사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랬다. 배터리를 교체한 후 그 기사님은 나에게 시동을 걸어보라 했고 파워 버튼을 누르니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내 목을 향해서 뿜어져 나왔다. 배터리 교체 효과인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시동은 예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잘 걸리는 것 같았다. 14만 원을 계좌이체 할까? 카드로 결제할까? 고민하다가 기사님도 더운데 고생하셨다는 마음이 들어 계좌로 송금했다. 집에 와서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14만 원에 12% 할인된 금액인 123,200원이다. 이건 잊고 싶은 사실이다. 버스 지나고 나서 손 흔들면 뭐 하랴? 하지만 다음부턴 덜컥 결정부터 말고 검색도 흥정도 걸어야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물건값 흥정하는 게 주저된다. 상대방도 이문이 좀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차 시동이 걸리지 않자 딸을 못 데리러 가서 애가 탔는데자동차 시동이 걸리니 내 마음은 비단처럼 부드러워졌다게다가 고속도로나 시내 한복판이 아니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니 얼마나 다행인지스스로 위안하고 넘겼다.   


 회사 각 본부 산하에는 여러 개 팀이 있고 그 팀 중 선임부서를 주무부서로 통칭한다. 주무 부서는 회사 조직도에서 본부 산하 제일 앞에 배치된 부서로써, 본부 직원들의 선호부서 1위이다. 다양한 업무를 해 볼 수 있고 본부의 일을 직간접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8년 전쯤 일이다. 나는 주무 부서에서 4년간 일 하면서 경력을 쌓고 그 이후 A 부서의 B 직무로 내정되었다. 그런데 실제 발령은 C 부서 D 직무로 났다. 어찌 보면 좌천이었다. 누구랑 결혼할지는 결혼식장 들어가 봐야 알고, 인사는 시행문 떠봐야 안다더니 나는 발령 소식에 꽤 크게 충격받았다. C는 인원도 많고 각 업무가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프로세스대로 진행되는 업무지원의 허브(hub) 같은 부서였다. IT 부서와도 상당히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고 콜센터 등에서 응대하지 못하는 악성 민원도 처리해야 하는, 말 그대로 리스크(Risk) 관리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관리의 핵심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상당히 긴 컨베이어 벨트 수 십 대 돌아가는 공장에서 한 레인의 컨베이어 벨트만 책임지는 작업반장으로 발령 난 격이었다


 C 부서는 주무 부서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담당 부서장이 임원인 만큼 본부 내 입지도 상당히 컸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주무 부서에서 컨베이어 벨트에서 어떤 제품을 조립할지 결정하고, 인원 채용과 조직 운영을 어떻게 할지 기안해서 보고하고, 경쟁사 현황 등을 조사하여 이듬해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 반영하는, 큰 시각에서 굵직한 업무를 맡아왔었다. 그런데 한 레인의 컨베이어 벨트만 책임지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micro management)를 해야 하는 작업반장이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료 중 일부는 ‘발령이 왜 그렇게 난 거야?’라며 정말로 궁금해했고, 일부 동료들은 ‘저 업무를 맡게 되면 현장을 잘 이해하겠네’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나는 경력개발경로(CDP:Career Development Path)가 꼬였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맡은바 업무에 대한 책임감은 신입 때부터 투철했던 터라 열심히 일했고, 많은 개선 사항을 찾아 업무에 반영시켰다. 누군가의 말처럼 비즈니스의 본질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고객의 소리(VOC:Voice of Customer)를 마주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책상머리에서만 일했다는 반성도 들었다. 2년간 컨베이어 벨트의 작업반장으로 그 어떤 전임자보다 많은 개선 사항을 끌어냈고, 개선장군처럼 주무 부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주무 부서에서 2년간 새로운 업무를 맡으며 나의 경력개발 포트폴리오(Career Development Portfolio)가 풍성해졌을 때, 업무지원의 허브(hub)부서인 C팀의 조직장으로 발령받았다. 좌천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그때의 발령과 C팀의 근무 경력이 나에게 기회를 가져다줬다. 2년간의 근무 경력이 없었다면 C와 같은 대규모 부서의 인사관리직무관리성과관리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근무해 본 경험이 나에게 큰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3년째 부서장 임무를 수행 중이다    

 

‘더 코트쉽 (The Courtship, 이다 : 영원한 사랑 이야기)에서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은 나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주인공의 나레이션(narration)은 참말이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아니 외워야 한다. 그래야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생의 난관을 직면할 수 있다.      


Key Message

1. 나쁜 일이 생기면 곧 좋은 일도 생길 거라고 믿어라, 아니 외워라!

2. 소 잃고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더 좋은 소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3.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러니 우쭐하지 말고 주눅도 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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